[기자수첩] "법 대로 해"가 판치는 여의도
[기자수첩] "법 대로 해"가 판치는 여의도
  • 강민정 기자
  • 승인 2023.02.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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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분쟁을 겪을 때, 예를 들면 가벼운 접촉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상호 간 원만하게 합의하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만일 서로에게 과실을 미룬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쌍방 간 언쟁이 붙고,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긴장된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르면 다투는 이들 중 누군가의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법대로 해!"다.

법대로 해, 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라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담겼다. 법은 공정하고, 사리 분별을 잘하며, 누구에게나 평등할 거란 믿음. 입 밖으로 굳이 내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나라는 '법대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번째로는 '서로 잘못이 없다고 하니, 어디 한번 겨뤄 보자'는 의미다. 이 말은 언제 나오는 지를 떠올려 보면 쉽다. 처음에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라고 존대로 시작하다가, 서로에게 잘못을 미루다가, 그 과정에서 점점 '그쪽이 잘못 했잖아'며 말이 낮아지고, 누구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아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면, 그때야 등장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양쪽 모두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면서 애초에 합의점을 열어두지 않는단 거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대립만 격화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최근 여의도에서도 '법대로 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향해 '우리사주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위례·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등에 휩싸여 검찰의 재차 소환 조사 요구를 받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이 대표와 관련한 범죄 혐의는 정치 영역이 아닌 사법 영역이다"고 몰아세웠고,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1월12일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닌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검찰 관계자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또 김 여사가 갖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한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정치인들은 정치에서 '말'을 우선했다. 이를 특히 강조한 게 故(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이 곧 정치에서 '무법(無法)'이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법에 앞서 대화와 타협이 선행돼야 한단 의미로는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여의도는 '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법'이 대신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라지고 대립만이 남았다. 이곳은 정치 현장일까,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정일까. 우리는 이걸 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mjk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