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국민 오디션이라도 보자는 걸까
[기자수첩] 대국민 오디션이라도 보자는 걸까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3.01.2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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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들은 인사, 조직개편을 마무리 하고 사업을 한창 추진 중인데 KT는 답답할 겁니다.”

최근 만난 통신업계 관계자가 꺼낸 말이다. 한국 대표 통신기업 KT가 인사조직을 아직도 마무리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KT는 연말 인사조직개편을 발표했지만 이번엔 해가 넘긴 현시점에서도 인사를 미루고 있다. 이는 대표직을 놓고 논란이 장기화된 탓이다.

포문은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쐈다.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구현모 현 대표이사 사장을 차기 대표후보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두어 차례 반대 의사를 밝히며 발목을 잡았다.

첫 번째는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취임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를 검토해야 한다’며 운을 뗐다. 이에 KT 이사회는 구 사장의 임기 중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 적격’을 판단했지만 ‘다른 후보들과 경합해 심사하자’는 구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KT 영업이익은 구 사장 대표 취임 전 2019년 1조1595억원에서 2021년 1조6718억원으로 44.1% 증가했고 지난해 1조7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구 사장 취임 전 6조9000억원 수준이던 시가총액도 지난해 한때 10조원대를 넘어섰다.

KT는 대표이사 후보로 거론된 인사와 사내외 후보자를 놓고 심사대상자를 선정했고 총 7차례 걸쳐 심사한 후 구 사장을 차기 대표 최종 후보자로 확정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3월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구현모 대표이사 후보의 선임안건’에 반대표 행사를 시사한 셈이다.

물론 주주가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정도가 심했다는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대표를 뽑는데 무엇보다 실적이 중요하다”며 “어디까지 투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TV프로그램으로 오디션이라도 진행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국민연금의 이런 행보가 정부·정치권과 연관됐다는 시선이다. KT는 2002년 공기업에서 민영화 된 이후에도 정권 교체 때마다 대표가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된 남중수 전 사장은 연임을 시도했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검찰수사와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석채 전 회장도 연임 후 수백억원 대의 배임의혹, 위성 헐값 매각 등 논란에 휩싸이며 사임했다. 2014년 취임한 황창규 회장만 한 차례 연임 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