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송금' 두 얼굴…온라인 범죄 악용 우려
'익명송금' 두 얼굴…온라인 범죄 악용 우려
  • 배태호 기자
  • 승인 2023.01.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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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 '순기능' 외 성매매 조장 등 '역기능'
해외 유명 SNS를 통해 자신의 사진이나 영상 등을 올리고 토스 익명송금을 통해 후원을 요구하는 여성들 (사진=독자제보)
해외 유명 SNS를 통해 자신의 사진이나 영상 등을 올리고 토스 익명송금을 통해 후원을 요구하는 여성들 (사진=독자제보)

카카오페이나 토스의 익명송금이 사기는 물론 불법 음란물 유포나 성매매까지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송금 서비스 초기 제기된 ‘범죄 악용 가능성’이 현실화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해당 업체들은 별다른 대책은 마련하지 않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익명송금이 온라인 금융 범죄를 부추길 수 있고, 금융권에서는 익명송금이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상남도에 사는 20대 대학생 A씨는 최근 카카오 오픈채팅을 통해 알게 된 여성으로부터 5만원을 빼앗겼다. 해당 여성은 이른바 ‘조건만남’을 제안하며, 익명송금을 하면 5만원에 만나겠다고 제안했고, A씨는 돈을 보낸 것이다. 계좌입금은 사기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사진을 보고 음성채팅으로 대화까지 한 만큼 여성의 말을 믿고 돈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돈을 받은 여성은 채팅방을 삭제했고, A씨는 성매매 대가를 입금했다는 사실에 경찰에 신고도 못 하고 분을 참아야만 했다.

경기도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40대 B씨는 최근 해외 SNS를 검색하던 중 깜짝 놀랐다. 10대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자신의 사진과 영상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해당 여학생의 SNS에는 토스의 익명송금 주소가 걸려있었고, 금액별 판매 사진과 영상의 종류와 수위 등이 적혀있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카카오페이와 토스가 선보인 익명송금 서비스가 온라인을 통해 사기나 성매매 등에 활용되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돈을 주고받을 때 보내는 사람의 경우 익명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받는 사람은 실명이 표시된다. 실명 거래를 원칙으로 하는 금융실명제에 따른 것으로 특히 착오로 인한 송금 피해를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돈을 보낼 때 받는 사람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카카오와 토스가 선보인 익명송금은 실명은 물론 계좌번호를 노출하지 않고도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들 업체는 동호회 활동이나 중고거래 등에서 불특정인 혹은 불특정 다수와 돈을 주고받는 경우 계좌번호나 연락처, 이름 등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익명송금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누군지 모른다’는 익명성 탓에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온라인에서는 익명송금이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거래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사진=독자제보)
음란한 대화를 유도하며 익명송금을 통해 돈을 보낼 것을 요구하는 익명의 여성 (사진=독자제보)

사기와 성매매는 물론 이른바 온라인 ‘구걸’에도 이들 익명송금 서비스가 주로 사용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 목록에서는 ‘배고파요. 밥 사주세요’라는 대화방 제목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익명송금을 통해 돈을 보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10대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C양은 “많지는 않지만, 컵라면이라도 사 먹으라고 2000~3000원씩 돈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며 “가끔 실명계좌로 돈을 보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 익명송금으로만 요구한다”고 말했다.

익명송금이라 하더라도 카카오나 토스 서버에는 거래 기록이 남아있어 사기 등 피해를 본 경우 신고하면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소액이라 피해를 보더라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조건만남 혹은 동영상(사진) 판매 등 성적인 목적으로 돈을 보낸 경우 이런 사실을 경찰에 알리는 것이 부끄럽거나 처벌이 두려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SNS를 통해 10대 여고생인 척 행세하며 음란 영상을 판매하는 20대 D군은 “한 달에 많이 팔 때는 500만원 이상을 벌기도 한다. 그 사람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았어도 미성년자 여학생의 음란 영상을 사려고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오히려 자기들이 처벌될까 봐 그런지 신고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군은 “만약 실명으로 돈을 주고받아야 했다면 아마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온라인 사기 배경에 익명송금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진=독자제보)
SNS를 통해 음란 사진과 영상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글. 이런 불법 행위가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익명송금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독자제보)

전문가들 역시 익명성으로 인해 온라인 범죄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익명송금을 통해 이름을 숨기고 돈을 보내고 받는 것 자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고, 또, 실제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명으로 금전을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부작용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익명송금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익명송금은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착오 송금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받는 이에 대해서는 실명 확인을 해야만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없다면 부정적인 금융거래는 늘 수밖에 없고,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금융실명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익명송금 업체들은 불법 행위 금지 등을 안내하고 있다며 금융 거래자 스스로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토스 관계자는 “익명이라 하더라도 아이디는 확인해야 하고, 송금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아이디 주인 계좌를 확인하는 단계를 두 번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아이디 연결 계좌의 입금, 출금 내역을 모니터링해서 부정 거래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하면 사용자를 일시 차단하고, 부정 거래가 입증되면 해당 사용자는 영구적으로 토스 아이디 송금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신아일보] 배태호 기자

bth7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