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도상환수수료 면제의 명암
[기자수첩] 중도상환수수료 면제의 명암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3.0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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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은 이달부터 저신용자와 취약차주를 대상으로 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적으로 면제한다. 금리 상승기 서민들의 상환 부담을 경감 하겠다는 취지다.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자가 예정 기한보다 돈을 일찍 갚았을 때 내는 일종의 위약금이다. 대출이 약정 기한보다 일찍 상환되면 은행은 나머지 이자를 받지 못해 자금 운용 등에서 손실을 볼 수 있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대출자에게 일정 비용을 받는다.

즉,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대출 조기 상환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은행이 떠안겠다는 의미다.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이 최근 5년간 거둬들인 중도상환수수료는 1조1546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를 통해 연간 최대 600억원가량의 수수료 면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은행권이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둔 상황에서 수백억원대의 수수료 수입을 포기하며 서민들의 고통 분담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다만, 사실 이번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 은행에 먼저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당정은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취약차주가 유리한 대출로 갈아타는 데 중도상환수수료가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고 은행권에 협조를 구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12일 당정회의에서 “더 낮은 금리의 대출로 전환하려고 해도 중도상환수수료율이 높아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취약계층에 한정해서라도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은행권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등 떠밀려 나선 셈이다. 

더욱이 이번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조치는 실효성에서 의문부호가 붙는다. 금리 상승기를 맞아 대출금리가 대폭 오른 탓에 기존에 받은 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갈아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5대 은행의 CB 7등급(신용점수 601~650점) 신용대출 금리는 연 7.83~10.13%로 연초보다 2%포인트(p) 넘게 뛰었다. 올해 역시 금리 상승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환을 할 만한 대출 상품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은행을 이용하는 차주 가운데 저신용자가 많지 않다는 점도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5대 은행에서 연 8% 이상 신용대출 취급 비중은 평균 21.4%다. 고금리로 대출을 받은 저신용자가 열에 두 명꼴인 셈이다. 

금리 인상기 충격이 가장 큰 취약차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금융권의 대책은 분명 필요하다. 단, 정교한 계획 수립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수요가 있는 곳에 적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고민과 노력이 함께 더해져야 할 것이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