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사태. 초유는 '처음 초(初)'에 '있을 유(有)'를 쓴다. 직역하면 '처음으로 있다'는 뜻이다. 현재 국회 상황은 이 한 마디로 갈음할 수 있다.
지금 국회는 초유의 사태를 매일 갱신하고 있다.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예산안이 이렇게 주목을 받지 못한 적도, 예산안이 지금까지 처리되지 못한 적도.
여야 간 이견 차이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2일은 거뜬히 넘겼고, 정기국회 마감일인 9일도 넘겼다. 여야 중재에 나선 김진표 의장이 '마감 선'이라고 언급한 15일도 지났고, 김 의장이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역정을 내며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19일도 지났다. 그럼에도 여야는 여전히 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지루한 핑퐁 게임만을 계속하고 있다.
쟁점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와 행정안전부 경찰국,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부분이다.
법인세는 '3%p' 때문에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국제 경쟁력을 이유로 법인세를 적어도 3%p를 인하해야 한다는 반면, 민주당은 이를 초부자 감세라고 지적하고 1%p 인하라는 김 의장의 두 번째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을 압박한다.
행안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이보다 첨예하다. 민주당은 두 기관 자체가 위법한 시행령으로 설치돼 명분이 없다며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을 몰아세우고,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대선 불복이라며 맞선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거대 양당이 예산안을 두고 날 세우나 정작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잊힌 지 오래다. 그저 쟁점만이 남았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예산을 심의하는 것이 자신들의 책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은 소외돼 있단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은 국민에게 예산의 용처를 설명하고 필요성을 설득하거나, 야당은 예산의 쓰임이 부당하고 생각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쟁점 사안이 아닐지라도 예산은 곧 국민의 세금이므로 이를 어떻게 사용할 지 충분한 안내가 필요하다.
지금 예산안 정국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국민의 예산안이 아닌 여의도에 갇힌 '여의도 예산안'이다. 국회는 지금 나라를 위해 분투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초유의 사태'라는 말에는 '충격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지금까지 주체인 국민을 배제하고, 예산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를 방치해왔다는 게 본질이다. 국회는 이 초유의 사태를 무겁게 생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