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로고. [제공=푸르밀]](/news/photo/202210/1612043_784471_4838.jpg)
45년 역사의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사업 종료와 전 직원 해고라는 급작스러운 발표와 함께 내달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푸르밀은 ‘검은콩우유’, ‘가나초코우유’, ‘비피더스’ 등의 스테디셀러를 보유했지만 전문경영인이 물러나고 오너 경영 체제에서 만성적자가 심화되면서 결국 회사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회사 직원들은 경영진의 예고 없는 사업종료와 정리해고 발표에 ‘직원들을 사지로 내모는 살인행위’라고 분노하면서 다음 주중 서울 본사 앞에서 낙농가, 협력사와 함께 집단시위를 한다는 계획이다.
◇신준호·신동환 오너, 메일로 사업종료·정리해고 통보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푸르밀은 최근 350여명 전 직원(정직원 기준)에게 11월30일을 기점으로 사업 종료와 정리 해고를 통보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푸르밀은 해당 메일에서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됐다”며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푸르밀 실적은 코로나19 전후로 갈수록 악화됐다.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2017년 2575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으로 3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익은 15억원 흑자에서 124억원 적자로 바뀌었다. 누적적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341억원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오너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봤다.
푸르밀은 2017년까지 전문경영인(CEO)였던 남우식 전 대표 체제였으나 이듬해부터 오너가인 신동환 대표로 전환됐다. 신동환 대표는 신준호 푸르밀 전 회장의 차남이다. 신 전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이다. 푸르밀 모태는 롯데우유다.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사했다. 현재 푸르밀 지분의 60.0%는 신 전 회장, 10.0%는 신동환 대표가 가지고 있다. 오너 일가 합산 지분은 전체의 90%다.
신동환 대표 체제에서 푸르밀은 매출이 갈수록 하락하고 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각에선 신 대표가 새롭게 수익원을 창출할만한 제품 개발에 실패했고, 신사업 발굴에도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 [제공=푸르밀]](/news/photo/202210/1612043_784474_5126.jpg)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유업계가 저출산 심화로 시장이 침체되면서 서울우유, 매일유업 등 경쟁사들은 간편식(HMR)이나 비건(Vegan) 등으로 일찍 눈을 돌렸지만 푸르밀은 일부 가공유 신제품 출시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며 “결국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다보니 실적 악화로 이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신 대표는 LG생활건강, SPC 등 타 업체로의 인수합병(M&A)도 타진했지만 설비 노후화와 낮은 성장 가능성 등의 이유로 불발됐다.
◇노조 "불법 해고, 직원 죽음 내모는 살인행위"
푸르밀의 급작스러운 사업 종료, 정리 해고 발표에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푸르밀 직원들은 그간 경영정상화를 위해 공장 인원 축소, 임금 삭감 등을 감내했다. 하지만 신준호 전 회장과 신동환 대표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와 해고 통보를 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신준호 전 회장은 올 초 30억원 가량의 퇴직금을 받고 푸르밀에서 퇴사했으나 이후에도 서울 영등포 본사에 출퇴근하며 업무지시와 보고를 받았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공식 입장을 통해 “푸르밀 오너의 무분별한 일방적인 전직원 해고에 비통함을 느낀다”며 “(오너가) 어떤 조언도 귀담아 듣지 않고 무능력한 경영을 해오며 적자전환 구조로 탈바꿈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모든 적자 원인은 오너의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전직원에게 책임 전가를 시키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했다”며 “이는 350명 직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며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 행위”라고 강력 비판했다.
푸르밀 노조는 사업 종료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사측에 보내고 법적 대응을 위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또한 원유를 공급해주는 낙농가, 제품을 운반하는 화물차 기사들과 함께 다음 주중에 서울 본사 앞에서 집단 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푸르밀과 연관된 관계사 규모는 협력업체 50여명, 낙농가 50여호, 화물차 기사 100여명 안팎이다.
푸르밀 관계자는 “직원들은 오너가의 일방적인 통보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대리점을 비롯한 협력사 거래처와 낙농가 등의 재고 파악·관리를 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다음 주중에 본사 앞에서 시위를 통해 직원들의 상황을 알리며 투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