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과 양치기 소년
김형오 국회의장과 양치기 소년
  • 이강영
  • 승인 2010.01.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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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확정해 밀어붙일 태세인데, 이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현행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중앙행정기관 9부2처2청을 이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는 것인데, 정부의 수정안은 행정기관 이전을 백지화하고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을 모아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만드는 것으로 원안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특별법의 명칭부터 시작해서 1장1조부터 전부 뜯어고쳐야 할 판이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은 물론이고 비수도권 전체가 반대하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내 계파간 갈등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종시 수정관련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현 상황에서 직권상정 말고는 국회통과가 불가능할 텐데,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국회의장의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미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러 차례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경력이 있다.

지난 1일 새벽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야당의 반발 속에서 강행 처리했다.

앞서 수차례 “노조법은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지난해 7월 미디어법 날치기 때도 “의장석을 점거하는 세력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날치기를 위해 단상 점거에 나선 한나라당을 방치했다.

그리고 국회의장은 직권상정 때마다 “고민했다”, “외롭고 불가피하게 결단을 내렸다”는 변명을 덧붙였다.

이런 국회의장의 약속 번복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회의장이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게 됐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이 연상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정도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달 29일부터 3일간 의장석을 지키고 앉은 채 ‘넬슨 만델라 평전’을 읽었다고 하는데, 차라리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과 늑대’를 읽어보고 마을 주민들이 양치기소년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