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대재해법 완화, 약자는 누구?
[기자수첩] 중대재해법 완화, 약자는 누구?
  • 최지원 기자
  • 승인 2022.09.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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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산업계를 술렁이게 했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8개월을 맞는다.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안전보건관리 조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 가능하다는 게 주요 골자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사업자에게 경각심을 주고 인재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안전대책 방안인다.

그렇다면 성과는 어떨까. 고용부에 따르면, 1월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 8월31일까지 약 7개월 간 370건의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건(5.6%) 줄어든 수준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사고 예방보다는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대응해왔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국내 원톱 철강기업 포스코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4일 전남 포스코 광양 제철소에서 근무하던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A씨가 숨졌다. 태풍 힌남노로 직격탄을 맞은 포항 제철소 복구로 한창인 가운데 일어난 사망 사고다. 고용부는 사고 후 현장 작업을 중지시키고 포스코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포스코는 “근로자가 소속된 업체가 포스코와 하청계약을 맺지 않는 공급사”라고 해명했다.

자연스레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안전관리 능력도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여러 악재와 맞물린 최 회장이 2024년 3월까지 보장된 임기도 채우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10월 예정된 국정감사에 최 회장 소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직접적인 안전 책임은 원청사인 포스코가 아닌 하청업체에게 있다는 식으로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대적인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손질을 앞두고 있다. 윤 정부는 “기업의 자율과 책임에 근거한 안전보건관리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 처벌 완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는 이미 설치됐다.

엄격한 처벌 잣대를 적용 중인 현재도 몇몇 기업은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회피와 책임 축소에 급급하다. 여기서 법이 완화된다면 어떻게 될 지는 예정된 수순이다.

윤 정부는 최근 새 복지정책 기조로 ‘약자 복지’를 발표했다. 근로현장에서의 약자가 기업이 아닌 근로자 개인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기업의 안전관리 부담을 완화하고 보다 숨통을 트게 한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자칫 약자의 안전을 경시하게 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 중대재해법의 취지와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fro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