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건축사, 장막 걷고 앞으로
[데스크 칼럼] 건축사, 장막 걷고 앞으로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2.09.19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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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바람이 가을 낙엽 날리는 정도 솔바람으로 그칠지 업계 판도를 바꿀 태풍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업계 안에서는 건축사가 대한건축사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규정한 '건축사법' 시행이 큰 이슈다. 건축사 업무의 공공적 가치와 윤리 수준,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건축사협회 차원에서는 협회 의무 가입을 업계 대통합 기회로도 삼으려는 분위기다. 건축사협회를 중심으로 업계 목소리를 한데 모아 위상과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건축'의 사전적 의미는 구조물을 목적에 따라 설계해 세우거나 만드는 일이다. 건설 사업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설계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건축사가 뽑아낸 설계를 바탕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건설사가 시공한다.

지금까지 건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주로 시공을 향해 있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아파트 분야에서 시공사들의 사업이 활발했고 아파트 짓는 회사가 우리나라 건설을 대표하는 회사로 인식됐다. 아파트 앞에 시공사 이름과 브랜드가 붙는 게 일반적이던 관행이 '건설'은 '시공'이라는 개념을 갖게 했다.

이렇다 보니 건축사가 담당하는 설계 영역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어떤 회사가 지었느냐가 중요했고 누가 설계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건축사 업계에서 이런 인식에 조금씩 균열을 내려는 움직임이 있다. 업계 위상을 높이는 것을 넘어 국민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다. 

이달 초 국내 건축사들이 대거 제주에 모였다. '하나 된 건축사, 변화에 (   )를 더하다'라는 주제로 열두 번째 대한민국 건축사대회가 열렸다.

석정훈 건축사협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많은 것들이 외국 건축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순수 우리 건축사들의 작업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건축사들 자신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아쉬움이 모두 녹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석 회장은 이런 현실을 딛고 한국 건축이 책임 있게 성장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더 무게를 실었다. 지금껏 국내 건축사들의 희망 사항에 그쳤던 건축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아보자는 목표도 제시했다.

건축사 업계는 새롭게 정한 윤리강령에 변화를 이끌 키워드를 담았다. '청렴'과 '공정', '책임'을 무기로 그동안 건축 발전을 억눌렀던 부정 요소들에 과감히 저항하자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런 의지가 실천으로 이어질 때 건축사 업계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도 몸집을 키울 수 있다. 뻔하게 들릴 수 있는 청렴과 공정, 책임이 왜 변화를 이끌 키워드인지 건축사들은 잘 알고 있을 거다.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심과 이런 이기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세력은 변화 앞에 놓인 가장 큰 장벽이다.

국민과 언론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건축을 음지로 몰아넣었던 장막을 걷어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건축사를 '을' 취급하던 건설사나 기득권을 바탕으로 공모 과정에서 재미를 보려 했던 심사위원들에게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

국민과 언론이 건축의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건축이 당당하게 양지로 나올 때 우리 도시, 나아가 우리 삶이 더욱 건강하게 바뀔 수 있다. 건축사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깊은 관심과 무거운 책임을 함께 줘야 한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