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면담 대신 전화통화 택… "카운터파트는 국회의장"
'중국 의식' 지적엔 "국익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끝내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휴가 중이라서"라고 설명했지만, '미중 갈등'을 고려한 외교전략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2시30분부터 40분간 펠로시 의장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날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JSA방문에 대해 "한미 간 강력한 대북 억지력의 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이 끝까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펠로시 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첫 여름 휴가 중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는 가운데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다"고 운을 뗀 뒤 "한미동맹은 여러 관점에서 중요성이 있지만 특히 도덕적으로 볼 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펠로시 의장은 "앞으로도 한미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를 함께 가꾸어 가자"고 제안했다고 김 차장은 설명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펠로시 의장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선 정상들을 만났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을 비롯해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 말레이시아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총리와 회동했다. 5일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 간 깜짝 만남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전화통화로 환영을 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최영범 홍보수석비서관은 오후 브리핑에서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과 윤 대통령 휴가 일정이 겹쳐 (대통령) 예방 일정을 잡기 어렵다고 미국 측에 사전에 설명했고 펠로시 의장 측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중국을 의식했다는 지적에는 "모든 것은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선 "압축적으로 드린 말씀이고 그 해답은 언론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의 '카운터파트'는 우리나라 국회의 수장이자 국내 의전서열 2위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란 점을 강조했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펠로시 의장의 파트너는 국회의장"이라며 "국회의장이 파트너인데,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 만나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을 고려한 '외교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과의 관계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점을 두고는 야권 일부에서 옹호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중국과 상당한 마찰을 빚고 방한하는 것인 만큼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펠로시를 만나는 것은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으로, 그를 슬쩍 피한 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며 우 위원장과 견해를 같이했다.
[신아일보] 김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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