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한 넘겼다…밀크플레이션 '일촉즉발'
결국 시한 넘겼다…밀크플레이션 '일촉즉발'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2.08.02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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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가격제' 정부-낙농가 갈등 지속, 1일 '원유기본가격' 결정시한 넘겨
정부 논의 중단, 생산자 '납유 거부' 검토, 원유생산 감소…'우유대란' 우려
어느 마트에 진열된 유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마트에 진열된 유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우유, 유제품 원료가 되는 원유(原乳)의 기본가격 적용 시한인 8월1일이 결국 넘어갔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두고 정부, 유가공업계와 낙농가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아예 관련 논의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유제품은 물론 빵, 커피 등 연관 제품 가격까지 잇달아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졌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8월1일부터 적용돼야 할 새로운 원유기본가격이 유업계, 낙농가, 정부 간 협상이 불발되면서 아직 결정되지 못했다.

원유기본가격은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지난 2013년 이후 매년 8월1일 생산분부터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원유가격연동제는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유 생산비 증감분을 잣대로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4% 이상이면 10% 안에서 협상을 거쳐 결정한다. 시장상황이나 수급이 아닌 원유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체계다. 지난해 기준 우유 생산비는 리터(ℓ)당 843원이다.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원유기본가격 산출식에 따라 올해 ℓ당 47~58원 범위에서 인상 요인이 작용한다.

◇정부·유업계 '경쟁력 강화' vs 낙농가 '소득 감소'

올해는 원유기본가격 결정을 위한 협상조차 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낙농제도 개편을 위해 추진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두고 정부, 유가공업계와 낙농가 간 갈등이 크기 때문이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가격을 음용유·가공유로 차등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생산비 연동제로 용도 구분 없이 쿼터 내 생산·납품하는 원유에 음용유 가격인 ℓ당 1100원(인센티브 포함)을 적용한다. 차등가격제는 흰우유를 비롯한 음용유 용도의 원유(약 195만t)는 지금 수준을 유지하고 가공유(10만t)는 수입산과 경쟁할 수 있도록 800원 수준으로 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유가공업계는 저렴한 수입산 유제품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한 만큼 지금의 생산비 연동제는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우유 소비가 전반적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생산비 연동제는 불합리한 구조로 보고 용도별 차등가격제 카드를 꺼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6.5킬로그램(㎏)에서 지난해 32㎏으로 줄었다. 반면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는 전체 유제품 소비는 63.9㎏에서 86.1㎏으로 늘었다. 국산 원유는 수요가 줄어드는 음용유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유제품은 대부분 값싼 수입산으로 충당해 왔다.

낙농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이 결국 원윳값을 하락시켜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사룟값 등 생산비용 인상 여파로 축사 경영이 어려운데 원유를 용도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경우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이유다. 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호당 평균 부채는 39.5% 늘고 폐업 농가는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 낙농육우협회는 지역별로 궐기대회를 열면서 납유 거부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27일 열린 생산자단체 낙농육우협회 전남도지회의 궐기대회 모습. [사진=한국낙농육우협회]
지난 7월27일 열린 생산자단체 낙농육우협회 전남도지회의 궐기대회 모습. [사진=한국낙농육우협회]

정부는 그럼에도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달 지자체와의 낙농제도 개편 긴급대책회의에서 “현재 음용유 중심의 생산은 낙농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용도별 차등가격제 등 낙농제도 개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농식품부는 지난달 28일 신뢰를 문제 삼으며 낙농육우협회와의 낙농제도 개편 협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가 관련 설명회·간담회 등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지만 생산자 참여가 저조하자 낙농육우협회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낙농육우협회는 같은날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악감정을 내세워 협회를 패싱했는데 갑작스럽게 논의를 중단한 것은 소도 웃을 일”이라며 농식품부를 비판했다. 

◇유업계 1위 서울우유, 공급부족 따른 제품 미납 공지

더욱이 연일 무더위로 원유 생산은 감소 추세다. 낙농진흥회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1분기 원유 생산량은 전년 동기보다 2.5% 줄어든 49만8000t이다. 2·3분기(예상치)는 각각 평균 3.9%(51만500t), 4.5%(47만4500t) 하락할 전망이다. 국내 유업계 1위 서울우유는 최근 유통업체에 원유 공급 부족으로 8월 말까지 제품 미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낙농가 간 지지부진한 원유기본가격 협상과 원유 생산 감소를 감안할 때 우유 수급에 차질을 빚는 ‘우유대란’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빵과 커피, 아이스크림 등 우유 사용비중이 높은 다른 식료품과 외식업계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 등 유업계 빅(Big)3가 지난해 8월 원유값이 ℓ당 21원 오른 직후 그 해 10월 우유 가격을 인상하자 스타벅스와 파리바게뜨, 빙그레 등이 잇달아 가격인상을 단행했다. 스타벅스는 우윳값 인상 후 약 3개월 만인 올 1월부터 우유가 들어가는 카페라떼를 비롯한 46종 음료 가격을 최대 400원 올렸다. SPC 파리바게뜨는 올 1월 식빵·케이크를 포함한 66종 가격을 평균 6.7% 인상했다. 아이스크림 회사 빙그레는 올 3월에 메로나·투게더 가격을 최대 500원(소매점 기준) 올린 데 이어 이달 1일부터 붕어싸만코 등 다른 인기제품 가격을 20% 인상·적용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유 생산 감소에 낙농가의 납유 거부까지 더해지면 우유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결국 연관된 식료품·외식의 잇따른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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