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빅블러 시대] 성역 없는 금융권…은행·보험·카드·증권 모두가 '경쟁자'
[요동치는 빅블러 시대] 성역 없는 금융권…은행·보험·카드·증권 모두가 '경쟁자'
  • 김보람 기자, 이민섭 기자, 문룡식 기자
  • 승인 2022.07.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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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전업주의 규제 완화 등 금융·비금융 칸막이 제거

정부가 '빅블러 시대(급속한 디지털화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에 아날로그식 금융규제를 재정비하면서 관련 시장은 요동치게 됐다.

정부는 전통적인 금융 규제를 대대적으로 손보고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등을 시대 흐름에 맞춰 개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규제혁신이 가시화하면 당장 은행에선 알뜰폰·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진출하고 보험사는 상조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된다. 또 증권업계는 한국거래소와 경쟁할 대체거래소를 설립해 거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외 경우의 수도 다양해진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혁신을 기대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제1차 금융규제혁신 회의를 열고 금융산업이 신기술과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4대 분야와 9개 주요 과제, 36개 세부과제를 선정해 금융규제혁신을 추진해 나간다고 밝혔다.

(사진=신한은행 배달 앱 '땡겨요')
(사진=신한은행 배달 앱 '땡겨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산업에서도 방탄소년단(BTS)과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며 "금융규제는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오프라인·온라인 상관없이 글로벌 금융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금융사와 빅테크 모두 디지털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 비금융 신사업 확대…빅테크와 '맞장'

은행권은 이번 금융 규제개혁에서 '금산분리'와 '전업주의' 완화를 가장 눈여겨보고 있다.

금융지주는 비금융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은행 또한 원칙적으로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출자가 불가하다.

비금융사의 위험이 금융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지만 빅블러 시대로 진입한 현재와는 맞지 않는 데다 금융업에 진출 중인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에는 적용되지 않아 차별적 규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또 전문 금융업무만을 수행하고 다른 금융업무 참여를 제한하는 전업주의 역시 은행의 사업 확장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은행권은 그동안 규제에 가로막혀 신사업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KB국민은행이 2019년 알뜰폰 사업인 '리브엠(M)'을, 신한은행은 올해 초 배달 앱 '땡겨요'를 각각 내놓으며 이종 산업에 발을 들여놨지만 규제 샌드박스(유예제도)에 기댄 제한적 진출이라는 한계가 지적됐다.

실제로 국민은행 리브엠의 사업 허용 기한은 내년 4월까지로 이 기간 규제 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심사를 받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시한부 처지다.

금산분리 등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들은 한계가 있는 규제 샌드박스 방식에서 나아가 신사업 진출이 이전보다 수월해질 전망이다.

일례로 국민은행이 앞서 진출한 알뜰폰 시장에 신한과 농협은행이 후발주자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구체적인 규제 완화로는 은행이 업종 제한 없이 자기자본의 1% 한도 내에서 지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시중은행의 자기자본이 20조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2000억원대의 비금융 자회사를 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IT(정보통신기술)와 플랫폼 관련 업종의 자회사 규제 완화가 유력하다. 

은행들이 디지털금융혁신과 생활밀착형 플랫폼을 목표로 하는 만큼 관련 전문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등을 인수해 자회사로 두고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의 가상자산 사업 진출 길도 열린다. 현재 은행권은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제휴를 통해 제한적인 서비스만을 제공할 수 있다. 실명 계좌를 개설하거나 투자자의 보유 가상자산을 조회할 기능 정도에 머무르는 상태다.

금융당국의 규제 혁신 과제에 은행 가상자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항목이 있는 만큼 현실화될 경우 은행을 포함한 금융사들의 가상자산업 진출은 속도를 낼 수 있다.

한화손해보험은 지난 5월 디지털 화상청구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융규제혁신이 이뤄지면 앞으로 청구 서비스뿐만아니라 비대면 보험가입도 가능해질 전마이다. (사진=한화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은 지난 5월 디지털 화상청구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융규제혁신이 이뤄지면 앞으로 청구 서비스뿐만아니라 비대면 보험가입도 가능해질 전마이다. (사진=한화손해보험)

은행권은 규제 완화를 통해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역차별 받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빅테크 업체는 규모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아 자유롭게 영업해 왔다"며 "은행은 정통 금융사라 빅테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제약이 많았는데 이번 규제 완화를 통해 대응하고 경쟁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보험사, 상조 자회사 두고…카드 앱에서는 송금

보험사는 보험업과 전혀 상관없는 상조회사나 엔터테인먼트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된다.

현재 보험사는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 15%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보험업과 연관되지 않으면 15%를 넘게 투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핀테크, 헬스케어 등 IT 기업에 투자하려고 해도 협상 지연과 결렬 등 신사업 추진에 애를 먹었다.

규제가 완화되면 보험사는 빅테크사처럼 보험업과 아무 상관없는 게임사, 커머스사 등도 자회사로 보유할 수 있다. 물론 보험과 연계된 헬스케어 자회사 등의 운영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보험사는 플랫폼 기반 비금융서비스도 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펫팸족을 위한 △반려동물 건강정보 상담 △동물병원 예약 △사료·영양제 큐레이션 △맞춤형 반려동물보험 가입과 보험금 청구 등 관련 서비스와 결제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식이다.

이와 함께 보험사 '1사 1라이선스' 규제도 완화될 전망이다.

1사 1라이선스란 1개의 금융그룹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각각 1개 회사만 설립해 운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지금까지는 판매 채널을 완전히 분리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복수 허가가 허용됐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채널에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구분 없는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길이 열린다.

아울러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100% 비대면 보험 판매(화상)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카드사는 입출금 계좌를 통해 결제와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캐피탈사는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는 시대도 예상할 수 있다.

여신전문금융업계에서는 신사업 추진을 위한 포괄적인 부수 업무 완화를 이번 규제 개선 핵심 과제로 요청했다. 

앞서 카드사는 모바일 앱을 통해 결제는 물론 입출금 계좌를 활용한 송금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 사업자' 허용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또 카드사의 플랫폼 비즈니스 활성화와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에 대한 대주주 요건과 카드사 보험모집 판매 비중 규제, 다중채무자의 신용카드 발급 제한 등의 규제 완화와 비대면 방식의 카드 배송 허용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캐피탈사는 온라인쇼핑몰 등 통신판매업을 할 수 있고 보험대리점업무도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부동산 리스 규제, 단기렌탈 요건 완화 등의 건의도 했다.

이밖에도 △여신전문금융사의 비금융사 출자규제 완화와 의결권 제한 개선 △지배구조법상 위험관리책임자 자격 인정 범위 확대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선임 기준 완화와 겸직 규제 완화 △부수 업무 자산에 대한 자산유동화 허용 △해외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 규제 완화 등의 과제도 여신금융협회에서 나왔다.

◇ATS 설립 초읽기, 거래소 독점 붕괴
증권업계는 국내 주식 매매 체결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거래소와 경쟁할 대체거래소(ATS) 설립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ATS는 한국거래소의 주식 매매 체결 기능을 대체하는 거래소며 미국·유럽·호주·일본 등 해외 국가는 이미 도입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는 각각 약 60개, 150개의 ATS가 운영되고 있지 한국은 거래소가 유일하다.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앞서 2015년 ATS 도입을 위해 금융투자협회와 대형 증권사는 테스크포스(TF)를 결성해 대체거래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부산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추진이 전면 보류됐다.
 
하지만 2018년 7월 한국거래소의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고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공약 행보와 발맞춰 ATS 설립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 거래대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에 금융 당국은 ATS 도입을 통해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성 확대, 경쟁을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금융투자업계는 2024년 ATS 운영 목표를 위한 사전작업 준비에 한창이다. ATS설립위원회는 8월 ATS 인가 심사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예비인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는 ATS 설립을 반기는 분위기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 증권 유통 채널이 한 곳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며 "거래 효율화, 다양화를 위해 ATS는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ATS가 설립되면 한국거래소의 독점 체제 붕괴로 △매매 수수료 인하 △거래 시간 확대 및 활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업계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신탁 제도 개선을 천명한 만큼 신탁 운용의 자율성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본시장·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신탁업자는 금전과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임차권 등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 외 재산을 수탁할 수 없다.

그간 금융 당국은 수탁 가능 재산에 부채와 영업권, 담보권 등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해관계자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처리하지 못했던 만큼 신탁 제도 전면 개편을 통해 금융사가 다룰 수 있는 재산 범위가 넓어지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재산을 신탁에 담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금융 당국이 금융규제혁신 과제로 균형 잡힌 신산업 규율 체계 구축을 목표로 내세운 만큼 디지털 증권 규율 체계 확립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그간 디지털 증권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으며 세계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4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뮤직카우의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의 증권성을 인정하면서 증권형 토큰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이번 발표로 금융사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빅블러 시대는 결국 핀테크와 금융에 대한 경계가 없어지는 것으로 전 금융사들에 위기이자 기회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