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눅눅하여 잠 못이루는 깊은 밤에는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더러 있다.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먼 심심유곡이어도 생존에 필요한 일용한 양식으로 옥수수와 감자는 있어야 하는, 물거품처럼 허무한 인생을 여섯살 무렵에 깨우쳤다. 믿거나 말거나,
구슬치기 하는 형들 틈에서 낙수물이 떨어지는 처마밑의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전생에 스승께서 해 주신 말씀인 듯 귓전에, "인생이 찰나이니, 물 방울 처럼 눈 깜짝이니," 아 ~ 깨우침 또한 덧 없지만, 이후에 죽을고비도 여러번 치른 나는 아흡살쯤에는 TV연속극에서 어느 소년의 죽음을 의미하는 엔딩 장면에서, 아버지께 "아부지 죽으면 어디로 간데유?" 울 아버지는, "죽으면 영원히 오래도록 자는겨!"라고 했지, 그 때에는 과히 죽음에 대해 어긋난 답도 또한 맞는 답 같지도 않았지만, 살다가 보니 이보다 더 합리적인 죽음관도 없지 않는가?
'영면', 영원히 잠이 듬, 일상에서도 잠이드는 연습을 매일 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이다. 불면증이어서 잠드는 연습 또한 쉽지 만은 않지만, 어제 밤은 그런데로 잠시 눈을 붙였다.
시인이 그깟 죽음을 두려워 하는건 어불성설 語不成說 이지 않을까?
시인은 죽었어도 시는 죽지 않아서 시인의 숨결은 살아서 그의 말과 소리는 늘 하염없이 영원을 산다네 죽기위해 혹은 살기위해서 시를쓰고 난뒤 육체에서 숨이 나가며 정신에 남겨진 시 한편 누추한 아름다움은 이 지상에 덩그렇게 놓여있다네 삼복더위 밤은 더 깊어지는데 잠을 잊고는 가상의 옛 여인 이름을 춘자라 부르며 날 것같은 잡문이 저절로 쓰여졌다.
제목은 춘자야 비온다 어쩌구 하는 글인데, 날것처럼 온통 비리기만 하였다.
야 이~나쁜 인간아 하고 많은 이들이 걸어 가고 있는데, 그 번화한 거리의 한가운데서 야이~ 나쁜 인간아 하면 꼭 그녀석만이 돌아볼 것 만 같은데, 그 녀석 정말 걸려 들면 혼내줘야지, 참 세상엔 널리고 널려버린 씨앙눔, 씨앙년이 넘 많아서 그 날밤 그토록 내리는 빗속에서 술마시고 싶은 이유라며 왜 술마시고 싶은 변명으로는 빈약하더냐며 마을에 사는 지인이 시비조로 농을 친다.
나도 그 말에 적극 동조는 하지만, 녹두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시원하게 한잔 마시고 미친듯이 마냥 이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고싶다나, 우산도 쓰지 않고 중얼 중얼 거리며 혼잣말을 하며 걸으면 오죽이나 좋을 것 같은냐고 탁배기 몇 잔 걸친 그의 넋두리에, 나의 속없는 댓구다.
"남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면 말이야, 그렇게 해보면 오죽 좋겠니?, 비맞은 뭐 처럼 중얼 중얼 비맞고 거리를 헤멘다면 분명 광인이 되는거야!"
아~비오니까 광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요즘 만나는 것은 거의 함정이다
그 함정인 천길 낭떨어지에 밀어 넣으려는 간악하고 비열한 인간들 투성이, 만약 그렇다면 저주와 복수전은 계속 이어 지리라, 그리하여 어떨 땐 알콜 중독자처럼 술도 홀로 마셔야 편하다. 홀로 마시는 술잔 속에도 눈물이 머금어서 눈물 바람일 때도 간혹 있다.
주독의 함정은 깊다. 함정은 꼭꼭 숨어서 우리를 노려본다.
잊혀지지 않고 떠나지 않는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철망에 갇혀 목숨을 담보로 승냥이, 이리떼 마냥 엉키고 성킨 고만고만한 것들이 끼리끼리 목숨을 담보로 썩어가는 몸을 팔고 형체 없는 맘도 팔며 팔거는 다 팔고 팔고 사야하는 허접하여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 같은 부질없고 지저분한 생의 언저리여!
세도를 위해서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는, 팔리지 않는 육체를 저당잡혀야 하는, 아 ~ 인생이 도대체 뭐라고 그 밤에 비는 마구 쏟아 붓는데, 나를 고뇌하게 했으며 새벽까지 철학을 하게 했던고.
/탄탄 불교중앙박물관장·동국대 출강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