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SG 경영’에 부는 열풍과 역풍의 위기
[기고] ‘ESG 경영’에 부는 열풍과 역풍의 위기
  • 신아일보
  • 승인 2022.07.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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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올 초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온통 ‘ESG 경영’을 환영하고 반기며 성원하는 응원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ESG 경영’은 기존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넘어 ‘공유가치 창출(CSV ; Creating Shared Value)’까지 아우른데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 시대에 기업이 환경보호·사회공헌·윤리경영을 통합적으로 성취하는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이전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무적 요소인 ‘주주의 가치 극대화’를 목적으로 기업을 경영했지만, 2008년 리먼 쇼크(Lehman Brothers Shock) 이후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기후 위기와 사회적 이슈,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속화되면서 오직 이윤 추구만으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됨에 따라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 과정에 있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렇듯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측정하는 투자자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고객, 종업원, 협력 업체, 지역사회, 정부 등 이해관계자의 공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실천하는 책임이 더해진 것이다. 

이에 편승해서 세계 유수의 기업은 ‘ESG’를 경영 원리로 도입하겠다고 서둘러 나섰고, ‘ESG 펀드’도 매년 급증해 지난해 말에는 전년 대비 53% 급증한 2조7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미국 투자분석기업 모닝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펀드 자산은 2021년 말 기준 2조7,0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53% 급증했다. 한국에서도 주요 대기업마다 예외 없이 ‘ESG위원회’를 만들고 경영선포식을 여는 등 지난 2년간 가히 ‘열풍’이라 할 만큼 ESG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6월 14일 ‘30대 그룹 공급망 ESG 관리현황’을 발표했는데 자산 기준 30대 그룹 소속 기업 가운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75개 사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76%인 57개 사가 협력사의 ESG 경영을 관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에스케이(SK)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200 기업 중 48%인 96개 기업이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각 기업의 ‘ESG위원회’ 활동 중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를 받은 것은 149건으로 전체 이사회 안건의 2.4%에 불과해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치지만, 기업들이 ‘ESG’를 주요 과제로 꼽아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나선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변화를 넘어 흐름이 역류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ESG 경영’을 환영하고 자랑하는 행진곡은 어느새 ‘ESG 종말’을 암시하는 장송곡으로 변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변곡점이 되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과 후의 무역과 금융, 경제의 흐름이 확연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올해 들어 이런 ESG 활성화 목적의 투자 자금이 눈에 띄게 마르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돈은 세상 변화 방향의 길목을 먼저 지킨다고 했다. 각종 ESG 펀드에 유입됐던 돈이 썰물처럼 ‘ESG’에서 ‘비(非) ESG’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 결과 그간 ESG 투자에서 배제됐던 영역의 종목들은 주가가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ESG 선호 영역들의 주가는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국제금융센터가 지난 5월 23일 내놓은 ‘ESG 투자(펀드·채권·대출) 둔화 배경 및 전망’ 자료를 살펴봐도 올해 1분기 글로벌 ESG 시장으로의 자금유입액은 750억 달러(약 97조 원)로, 지난해 4분기 1,425억 달러(약 184조 원)에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올 1분기 마지막 달인 3월 유입액은 150억 달러로, 2020년 3월 이후 최저다. 5월 ESG 상장지수펀드(ESG ETF) 역시 2020년 초 이후 처음으로 순 유출로 돌아섰다. 분명한 ESG의 역풍이 불고 있는 현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흐름이 아닐 수 없다. ESG 투자 둔화 배경으로 △금리상승(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방산업종 주가가 상승하고 금리상승에 취약한 하이테크주가 약세를 보이면서 ESG 주력 자산의 수익률 부진), △ESG 자산 전반에 대한 고평가 부담(ESG 주식은 ‘비 ESG 주식’에 비해 P/E가 높아 고평가 부담이 상존한 상황에다 채권의 경우에도 일반 채권 대비 ‘녹색프리미엄’형성), △ESG 채권 발행 환경 악화(금리 전망 불확실성, 팬데믹 마무리, ESG 프로젝트의 비용상승, 유럽시장 불안 등으로 이전보다 시장환경이 ESG 채권 발행에 부정적), △ESG 평가 기준에 대한 회의론(ESG 투자 평가 기준이 ESG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관련 리스크관리가 미흡하고 그린워싱이 난무한다는 지적의 지속적 제기) 등이 작용했다.

하지만, 변화 흐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빠르게 높아지는 금리와 낮은 ESG 투자 수익률 및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ESG 투자금 유출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이미 ‘시대적 조류’가 된 ESG 투자 흐름이 꺾이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ESG 투자가 둔화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의 높아진 인식 수준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ESG 투자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다, 미국 주가지수 제공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는 지난 5월 18일(현지 시각) S&P500 ESG지수에서 테슬라(Tesla)를 뺐다고 미국 CNBC 등이 보도했다. S&P는 “테슬라의 부족한 저탄소 전략과 인종차별, 열악한 근로 환경 등이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분노한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Tesla) 최고경영자(CEO)는 ‘ESG’를 “가짜 사회정의이며 사기”라고 했다. 심지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명복을 빕니다(RIP). ESG”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까지 내놓고 “ESG라는 말의 유용성이 끝나가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썼다.

또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 Rock)의 최고경영자(CEO)이자 ‘ESG 경영의 아버지’로 불리는 래리 핑크(Larry Fink)는 “다음 주주 총회에서 기후 관련 안건 대부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라고 밝혔다는 기사가 지난 5월 15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떴다. 블랙록(Black Rock)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주 총회 안건으로 올라오는 정책 상당수가 경영진을 구속하고 지나치게 규범적”이라며, “기업을 너무 꼼꼼하게 관리하려 하거나 주주 가치를 제고하지 않는 방침엔 모두 반대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은 블랙록(Black Rock)이 그간 보인 행보와는 정반대의 스탠스(Stance)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래리 핑크(Larry Fink)가 2020년 연례 서한에서 “ESG 경영에 소홀한 기업은 주주 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거나 주주개입 활동을 벌이겠다.”라고 밝힌 것을 기점으로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 ESG 열풍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방위 산업체를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이냐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전쟁으로 공급망 병목과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는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로 신속히 회귀했고, 안보 불안감도 높아져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도 커졌다. 여기에다 치솟는 기름값과 무기 구매 폭주로 화석연료 기업과 방산업체의 수익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포트폴리오(Portfolio │ 주식 투자에서 위험을 줄이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방법)에서 배제하는 ESG 펀드는 급기야 수익률이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고, 원유가격이 치솟으면서 에너지 기업 주가가 오르자 ESG 펀드의 매니저들은 일반 뮤추얼 펀드(Mutual fund)보다 수익률이 저조해질까 봐 좌불안석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렇듯 ESG에 대한 피로감이 여기저기서 노정되어 터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생존본능의 발동으로 ESG가 처한 딜레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ESG 개념에 대한 모호성(Ambiguity)이다. 무엇이 ESG의 본질인지 불분명하고 규범으로서도 여전히 의구심이 많았다. 도대체 좋은 일과 재무적 성과가 과연 조화롭게 추구될 수 있는 명제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다 애매모호한 평가 기준은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을 다 ESG로 보려 하거나 평가기관 간 기준도 들쑥날쑥하다는 주장이다. 같은 기업을 두고도 ESG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평가된다는 오류가 목도됐다. 

더 큰 문제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의 성행이다. ESG 경영과 투자에 대한 확고한 프레임이 없는 상황에서 비재무적 요소라는 한계를 악용하여 평가기관이 들여다보는 평가지에만 집중하거나, ESG 성과를 허위로 공시하거나,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억지로 ESG로 분류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의 출현이다. ESG를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하거나 무늬만 ESG에 불과한 ‘이에스지 워싱(ESG washing:홍보성 분칠하기)이나 아주 작은 일을 하고도 마치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처럼 과장하고 포장하는 ‘임팩트 워싱(Impact washing:산출·성과보다 목표 실현주의)’이 성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ESG 경영’에 부는 역풍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ESG가 태동하게 된 문제의식이 달라지거나 해결 의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결단코 아닐 것이며,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과 분석하는 잣대로 더욱 심화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강물의 새로운 물결이 옛 물결을 밀치며 바다로 흘러가듯 ‘ESG 경영’은 이미 거스를 수 없이 도도히 흐르는 시대적 조류가 되었고, 그 당위성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유럽연합(EU) 이사회와 유럽의회는 지난 6월 21일(현지 시각) ‘그린워싱(Green washing)’ 방지를 위해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 요건’을 강화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최종안에 합의했다. 표결을 통해 CSRD를 공식 확정하여 2024년부터 CSRD가 기존의 ‘비재무보고지침(NFRD)’을 대체하게 되면 연내‘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도 확정되어 수출 기업들의 ESG 역량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가 봉착한 기후 위기에 유연한 선제적·적극적 대응을 서두르고 재촉하는 인류의 모래시계는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 이윤 중심의 주주 권익만을 중시해온 경영이 불러온 불평등과 폐해는 포퓰리즘(Populism) 극단정치를 조장하는 불쏘시개가 되어 우리 사회와 미래세대에 커다란 부담과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 왔다. 기후 위기나 인권에 대한 관심도나 민감도가 높은 젊은 세대가 소비자나 노동자로서 기업이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디지털 기술 발달과 더불어 전례 없이 강력해진 인프라로 기능하며 ESG 경영의 연착륙을 위한 참으로 소중한 동인(動因)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역풍의 위기는 ESG 경영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더욱 발전하는 반전의 계기로 승화되어야 한다. 더불어 우리 기업들도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유럽연합(EU)의 환경, 유해 물질, 노동기준 등의 부합 여부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촘촘히 데이터를 구축하여 글로벌 표준에 맞춰 ESG 기준·평가를 강화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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