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메타(Meta)시대,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
[기고] 메타(Meta)시대,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
  • 신아일보
  • 승인 2022.06.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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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익 한국푸드테크협회 회장
 

수세기에 걸쳐 ‘오크통 숙성’이라는 전통 생산 방법을 고집하던 위스키 업계에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도전장을 내고 있다. 미국의 엔들리스 웨스트(Endless West)는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는 ‘분자(分子) 위스키’를 만든다. 이 스타트업에서 생산하는 위스키 ‘글리프(Glyph)’의 가격은 병당 40달러로, 오크통 숙성 과정을 생략한 덕분에 24시간이면 제조할 수 있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기법으로 위스키의 성분을 분석해 원하는 분자를 원액에 첨가해서 만든다.

미국의 로스트 스피리츠(Lost Spirits)는 위스키 원액에 나뭇조각을 넣고 빛과 열을 가해 위스키를 1200배 이상 빠르게 숙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강한 할로겐 빛을 쏘아 나무의 고분자 물질을 분해해, 오크통 안에서 수십 년간 숙성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이 스타트업의 위스키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은 20년 숙성한 위스키와 같은 맛을 낸다. 6일 만에 만들어진 로스트 스피리츠의 어보미네이션은 2017년 유명 위스키 평론가 짐 머리로부터 94점을 받으며 전 세계 4600개의 위스키 중 상위 5%라는 평을 받았다.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숙취가 없고 간에 전혀 유해하지 않은 술이 향후 5년 내에 시판될 전망이다. 영국 런던 임피리얼칼리지의 데이비드 너트 교수는 숙취 없는 인조합성 알코올 '알코신스(alcosynth)'를 개발해 출시 준비에 들어갔다. 너트 교수는 오랜 연구를 통해 술 취하는 기분은 나게 하면서 숙취는 유발하지 않는 알코올 대체 분자를 합성해냈다. 이 성분은 일반 술과 똑같은 취기를 일으키지만 간 기능을 해치지 않고, 술자리를 마치고 45분이 지나면 술기운이 사라진다. 

‘클래시페이크(classy fake)’는 ‘고급(classy)’과 ‘가짜(fake)’를 결합해서 만든 합성어로,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 상품, 그런 상품을 소비하는 추세를 의미한다. 이미 패션업계에서는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조 가죽과 인조 모피가 진짜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채식주의 열풍을 타고 무섭게 성장한 식물성 고기와 식물성 달걀 등 푸드테크 기반 대체육은 진짜를 넘어 가짜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가짜 상품을 소비하는 페이크슈머(fakesumer)는 진짜보다 가치 있는 가짜에 열광하며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페이크슈머들은 잔인한 도축의 결과물인 천연 가죽보다는 인조 가죽을, 고가의 명품보다는 다양한 컬래버 패션을, 동물성 식품보다는 식물성으로 만든 대체식품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결합한 제품을, 현실보다는 가상을 넘나드는 메타버스 세상을 선호한다.

2021년 7월1일 신한라이프 광고가 TV 전파를 탔다. 발랄하게 춤추는 미모의 20대 여성을 보고 사람들은 신인 가수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놀랍게도 가상 인간이었다. 이름은 오로지, 나이는 영원히 22세이고 출생지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다. 이 신한라이프 광고는 유튜브 조회수 1000만을 넘어 총 1500만 뷰까지 치솟았다. 신한라이프 광고가 나간 뒤 로지는 70건 넘게 광고 제안을 받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19세 스페인계 여성 릴 미켈라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인스타그램에 약 303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셀럽이다. 2018년 타임(Time)지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영향력 있는 25인에도 들었다. 미켈라는 스타트업 브러드라가 약 6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가상 모델이다. 요즘 미켈라는 패션쇼 무대에 서고 화보 촬영을 하는 등 등 연예인보다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미켈라는 2020년에 약 130억원(약 1170만달러) 넘게 수익을 올렸다. 흑인 여성 슈두그램은 2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가상 모델이다. 2017년 영국 런던의 사진작가 제임슨 윌슨이 만든 슈두그램은 미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 리한나의 뷰티 브랜드 펜티뷰티의 모델 등을 맡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11월 일본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결혼식이 열렸다. 도쿄에 사는 콘도 아키히코 씨(36)가 ‘하츠네 미쿠’라는 사이버 캐릭터와 결혼을 한 것이다. 2007년 크립톤퓨처미디어가 보컬로이드를 홍보하기 위해 개발한 가상 캐릭터 미쿠는 콘서트도 열고 TV나 게임 등에 출연하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가상 캐릭터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은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비서는 우리와 대화를 하는 것은 물론 기분까지 이해해주는 기기로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신 처리해주면서 조만간 인간의 개입 없이 모든 소비가 일어나는 ‘무접촉 소비(zero touch consumption)’가 일상화될 전망이다.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 알렉사, 삼성 빅스비, 애플 시리, KT 지니, SKT 누구, 네이버 클로바, 카카오 미니 등 다양한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들은 조만간 가족과의 대화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점점 더 일상의 지루한 요소를 자동화하려 할 것이다. 마트에 가서 가정용 일상용품을 구매하는 일, 음식을 만드는 일, 청소하는 일 등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바타가 진정한 디지털 쌍둥이가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아바타가 보편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진짜일까? 우리는 SNS에 사진을 올릴 때 좀 더 잘 나온 연출 샷을 올린다. SNS 속 우리의 모습은 실제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현실보다 가짜의 현실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도 모른다.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는 우리에게 새로운 메타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안병익 한국푸드테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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