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모래시계 검사’ 역사 속으로… 검찰, 수사권 잃다
[창간특집] ‘모래시계 검사’ 역사 속으로… 검찰, 수사권 잃다
  • 권나연·이인아 기자
  • 승인 2022.06.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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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시청률 40%를 웃돌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드라마가 있었다. 조직폭력배, 검사, 카지노대부의 딸의 삶을 통해 1970~90년대 현대사를 그린 '모래시계'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검사 우석은 절친한 친구에게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며 날카로운 수사력을 펼치는 정의로운 인물로 통한다. 하지만 현실 속 다수의 검사들이 이익과 출세를 위해 권력 앞에 무릎 꿇고 비리가 반복되면서 검찰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수사 중립성’ 논란에 직면한 검찰은 “한쪽 모래가 다 떨어지면 끝나는 게 꼭 우리 삶 같아.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끝이 있는 법이지.”라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사처럼 수사권을 내려놓게 됐다. 9월 ‘검수완박’ 법안 시행과 함께 본격적인 검찰개혁이 시작된다.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모래가 바닥을 보이기 전에 검찰은 개혁에 맞춰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형사사법체계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법안 발의부터 공포까지숨가빴던 정치권

검찰이 ‘수사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의 날개를 잃게 됐다.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으로 불리는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정식 공포되면서 오는 9월부터 검찰이 수사 주체로 기능하는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70여년만에 대변혁을 맞는다.

출범부터 ‘검찰개혁’을 외친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4월15일 ‘검수완박’ 법안을 발의하고 임기를 일주일여 남긴 5월3일 공포하기까지 개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여정은 숨가빴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문제가 본격적인 화두로 떠오른 것은 지난 3월 9일 대선이 더불어민주당의 패배로 끝난 직후였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개혁이 마무리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법안 발의를 강행했다.

예상대로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며 법안 저지를 외쳤다. 검장·검사장 등 고위 간부들은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들까지 일제히 회의를 열고 해당 법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다수당’이라는 유리한 고지에 선 민주당은 브레이크 대신 개혁의 엑셀을 거세게 밟았다. 민형배 의원이 안건조정위 구성을 고려해 탈당까지 감행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이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로 결렬되자 단독입법을 추진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전략으로 입법 저지에 맞불을 놨지만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 전략으로 이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4월30일에는 검찰청법(찬성 172·반대 3·기권 2)이, 5월3일에는 형사소송법(찬성 164·반대 3·기권 7)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수완박 법안을 "역사적·시대적 소명에 부합하는 정책 방향"이라고 평가하며 끝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형소법 통과 당일 법안을 공포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경찰 수사 중 시정조치 요구가 이행되지 않았거나 위법한 체포·구속이 이뤄진 경우, 고소인 등의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경우 '해당 사건과 동일한 범죄사실의 범위' 안에서 보완수사만 할 수 있게 된다.

◇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 검찰, 그때 그 사건

검찰개혁은 과거 정부에서도 수차례 논의의 대상이 됐다. 검찰이 책임감 있게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둘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정보기관이 조작한 공안 사건의 조력자 노릇을 하며 공안 검찰로 불리는가 하면 정권에 따라 표적수사를 하면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또 사건조작 의혹을 받거나 뒷돈을 받고 비리를 무마시켜 준 일이 폭로되며 여러 번의 흑역사를 썼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은 대표적인 오점이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 씨는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로 지난 2013년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아 제출한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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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도 증거 조작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관련 검사들이 수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비록 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는 무능함을 증명했다.

검찰의 비위사건도 여러차례 있었다. 1997년에는 의정부지방법원 주변에서 형사사건을 주로 담당하던 변호사 이순호가 브로커를 이용해 사건을 대거 수임한 것이 밝혀진 ‘의정부법조비리’ 사건이 있었다. 1999년에는 대전의 법원 ·검찰 직원들이 변호사에게 사건수임을 알선하고 소개비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대전법조비리’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2010년에는 부산에서 건설업을 하는 정모씨가 57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금전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MBC의 ‘PD수첩’을 통해 폭로되며 ‘스폰서 검사’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민·검 합동 진상규명위는 일부 검사들이 성접대 등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적인 접대를 통한 '스폰서' 역할이나 대가성은 없다고 결론 내려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이어졌다. 2011년에는 신종대 대구지검장이 고향 선배인 지역 기업가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일부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지휘로 경찰이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검찰 내사 종결 지휘권의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 강화되는 경찰·공수처… 그리고 중수청 설치

검수완박법 시행으로 경찰 수사권이 확대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기능은 강화될 전망이다.

경찰 수사권 확대는 2020년 1월13일 검경수사권 조정안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화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현 형사소송법상 수사·기소·영장청구 등 수사 전 과정에 부여된 검찰의 권한과 책임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검찰에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벌어지는 폐단을 막고 검찰과 경찰 사이를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재정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안은 국회 통과 후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 중이다. 법안 시행으로 경찰이 갖게 된 권한은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이다.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

수사개시권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될 때 경찰관이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경찰이 수사를 하는 건 당연한 의무지만 독자적 수사개시권 유무에 따라 인지수사(범죄 단서를 직접 인지해 조사하는 일)가 가능한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사개시권보다 눈여겨볼 것은 수사종결권이다. 수사는 기소돼 재판으로 가거나 불기소처분, 기소중지 등 종결처분이 요구된다. 경찰은 수사 결과가 ‘혐의없음’으로 나와도 입건된 사건을 무조건 검찰로 보내 검찰의 판단을 받아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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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검찰 송치·불송치, 수사중지 등 결정을 1차적으로 내릴 수 있게 됐다. 혐의가 없으면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사종결권은 검찰이 독점한 권한을 경찰로 분산했다는 점에서 특히 경찰 조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이 권력 비리 등은 덮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수완박법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은 2번째 검찰 권력 이양 법안이다.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등에도 경찰이 투입, 수사 범위가 넓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수사개시권,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은 검찰이 해온 중대 범죄까지 수사할 수 있게 됐다. 기존보다 경찰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셈이다.

수사 범위가 확대되면서 경찰은 역량을 증명하겠다며 전문성 제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수사관을 선발하는 평가시험을 치렀다.

경찰청은 ‘수사관 자격관리제도’ 운영 계획에 따라 수사경과(수사부서 근무요건)자는 형사법 능력평가 객관식 시험을, 책임수사관은 수사역량 평가 서술형 시험을 치러 자격을 주기로 했다.

공수처 기능도 강화될 전망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를 척결하고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적으로 수사·기소할 수 있는 부패수사기관이다.

2019년 12월30일 공수처 설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국무회의 공포를 거쳐 2021년 1월21일 공식 출범했다. 공수처는 입법·행정·사법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라는 게 큰 특징이다.

법 적용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장·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국무총리, 중앙행정기관 정무직 공무원 등 고위공무원이다.

검수완박법 시행으로 공직자, 정치인 관련 범죄를 검찰이 배제된 채 경찰과 함께 공수처도 수사가 가능해져 기능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이 우선적으로 수사하겠지만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공수처에서 다루게 된다. 공수처가 정치적으로 움직인다면 관련인들이 처벌을 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검수완박법으로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행보도 주목해야 한다. 중수청은 검찰 대신 주요 범죄 수사를 맡는 소위 ‘한국형 FBI(미국 연방 수사국)’으로 불린다.

중수청은 검찰이 직접 수사 6대 범죄 범위 중 일시적으로 맡고 있는 부패, 경제 범죄를 넘겨받는다.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수사권은 경찰에, 남은 2대 범죄(부패, 경제) 수사권은 중수청으로 넘어가면서 검찰은 비로소 모든 수사 권한을 박탈하게 된다.

정치권은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해 1년 6개월 안에 중수청 설립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 답습이냐 개혁이냐… 앞으로의 전망과 해법은

검수완박법이 일단 9월 시행될 예정이나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과정이 녹록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 권한 비대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다며 행정안전부를 통해 경찰을 사실상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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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는 5월 장관 산하 정책자문위원회 분과인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2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장관에게 지휘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안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검수완박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안을 준비 중이다.

또 공수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사가 모든 수사를 못 하게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공수처 검사도 수사를 못 하게 된다는 게 일각의 해석이다. 공수처법 23조에서 별도로 공수처 검사의 수사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며 검수완박법과 무관하다는 입장도 있다. 법 조항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풀이될 수 있어 계속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중수청 설치도 마냥 낙관하긴 어렵다. 민주당은 중수청 설립을 논의할 사개특위 구성 절차에 착수했으나 국민의힘은 특위 명단을 제출할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사개특위는 민주당 7명, 국민의힘 5명, 비교섭단체 1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라 실제 사개특위가 구성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의원 수적 열세로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입법 강행에 속수무책 당했으나 검찰과 함께 법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검수완박법을 당장 폐지할 방법은 없으나 수사권이 축소되기 이전에 최대한 성과를 올려 검찰 존재 이유를 증명하겠다는 생각이다.

검찰개혁 명분으로 입법된 검수완박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이 이뤄낸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70년 이상 이어온 형사사법체계 틀을 완전히 바꿔놓은 대변혁이다. ‘검찰 힘빼기’를 위해 경찰 권한을 강화한 게 개혁으로 평가될지, 경찰 역시 검찰에 지적됐던 폐단을 그대로 답습하는 조직으로 꼬집힐지는 지켜볼 일이다.

[신아일보] 권나연.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