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 무효”… 기업들 후폭풍 ‘촉각’(종합)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 무효”… 기업들 후폭풍 ‘촉각’(종합)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5.26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법원,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 강행규정 판단
노동계 "판결 환영" vs 기업 "경영부담 가중 우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노사 재협상 등 산업현장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임금피크제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해 온 기업들은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노동계의 움직임과 ‘후폭풍’을 주시하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B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재판은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에 따르면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재반부는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며 연령차별의 '합리적인 이유'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1심과 2심 재판부와 궤를 같이 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B연구원의 직무 성격을 보면 특정 연령기준이 요구 된다고 볼수 없다”면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해 2014년 명예퇴직했다. B연구원에서 2009년 1월부터 노조와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A씨도 2011년부터 적용대상이 됐다.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은 만 55세 이상이었다.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A씨는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게 됐다. 이에 A씨는 B연구원을 상대로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면서 개별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협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금피크제는 2000년대 들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업체별로 고령자고용법 위반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져왔다.

기업들은 임금피크제가 사라지게 될 경우 희망퇴직 등이 줄면서 정년을 채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이는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오면서 향후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상황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번 판결에 대해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다. 이번 판결은 본질과 법의 취지 및 산업계에 미칠 영향 등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향후 고령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 기회 감소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노동계는 이번 판단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오늘 판결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