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한때 '세계 부자' 94위였던 아돌프 매클레 VEM그룹 회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공매도의 비극이 부른 자살이란 평이지만, 이를 포르쉐홀딩스의 지략과 용기가 투기세력을 응징한 사례로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08년 리먼사태 와중에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노리고 공매도 세력이 활개쳤다. 매클레 회장은 독일차 폭스바겐을 공략해 주당 400유로였던 주가가 한때 반토막이 났다.
당시 폭스바겐의 최대주주인 포르쉐홀딩스 보유분은 35.1%, 2대 주주는 한 공공펀드였다. 이들의 보유분 총 55.1%를 뺀 44.9%만이 시중에 유통 가능하다고 본 뒤 전략을 짰던 것이다. 그런데 2008년 12월 폭스바겐의 최대주주 포르쉐 홀딩스는 공시를 통해 “최근 폭스바겐의 지분을 42.6%까지 끌어올렸고, 콜옵션을 이용하면 74.1%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반격했다.
이렇게 되면 외상을 갚아야 하는 공매도 세력이 다급해진다. 갚아야 할 지분이 12%선인데 시장엔 주식이 5.8%만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폭스바겐 주가는 반등한다. 야심만만 공격했다가 38조원(200억유로 상당)의 손실을 내고 물러선 것이다.
포르쉐의 강경한 대처를 보면 가끔 우리나라 주요 종목들이 공매도 세력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가 오버랩된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코스피200지수의 정기 변경 결과를 발표했다. 코스피200에 편입되면 패시브 펀드 등 투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공매도 타깃이 될 위험도 커진다.
이번 새 등장 종목 중엔 주로 메리츠화재가 거론되는 것 같다. 한국 최초의 손해보험사라는 상징성, 범한진일가의 유명세, 미욱한 경영방식으로 시선을 끌었던 점이 복합된 것이다.
한때 메리츠화재는 고배당으로 물의를 빚었다. 2014년 결산으로 400억원을 배당했는데, 당시 순이익이 전년 대비 17% 떨어진 때였다. 경영난으로 전 직원 중 15%를 떠나보낼 때였다. 그런 와중에도 배당 무리수를 뒀고, 그 결과 약 200억원이 지주회사인 메리츠금융에 귀속됐다. 물론 그중 상당액이 조정호 일가에게 갔다.
그런 탐욕의 배당에도 조정호 회장은 2019년 초여름, '상속계좌 미신고'로 벌금 20억원을 선고받는다. 세금을 아끼려고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에게서 상속받은 해외 계좌를 신고하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과거 공매도 공격 도마엔 대개 정직과 바른 경영, 주주보호를 위한 감투정신 등이 부족한 업체들이 올랐는데, 메리츠화재의 과거만 떠올리면 그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이번에 공매도 폭풍의 언덕에 선 것을 기회로, 경운기 운전 같은 주먹구구 대신 포르쉐 같은 경영을 하고 있음을 검증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