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최승호 그림 시집 '쌍둥이자리 별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신간] 최승호 그림 시집 '쌍둥이자리 별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5.24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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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음사)
(사진=민음사)

젊은 날 마음이 어두울 때 램프처럼 찾아온 문장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 문장들의 메아리 같은 그림들을 한글로 그려 보았다. 일종의 타이포그래피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뜻보다는 소리에 맛이 있고 단순한 문자로서의 멋이 있다. 세종 임금님은 한글을 발명했다. 뒤늦게 나는 한글의 재미를 발견한다. 말놀이를 한다. 그림을 그려 본다. _ 책을 내면서

최승호 시인이 그림 시집 ‘쌍둥이자리 별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세상에 내놨다.

24일 민음사에 따르면 이번 시집은 197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와 동시를 아우르며 눈부신 성취를 만들어 온 최승호 시인이 한글로 그린 ‘그림 시집’이다.

‘그림 시’는 단어와 단어의 의미를 연결해 문장을 만드는 기존의 언어 사용 방식에서 벗어나,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 형태를 만들어 그림으로 보여 주는 시의 한 형식인 ‘구체시’의 일종이다.

최승호 시인은 ‘구체시’를 ‘그림 시’로 새로이 명명해 소개하며, 구체시의 현대적 기원이 된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운동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덜어내고 언어의 직관적 형태가 주는 즐거움에 다시금 주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최승호 시인의 45년 시력에서 ‘그림 시’의 탄생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 예고된 것이었다. 말놀이 동시집이 출간됐을 당시 “그야말로 언어끼리 자유롭게 놀아 스스로 지어졌다”고 말한 시인의 말에서 드러나는 놀라움과 기쁨처럼, 말놀이를 만난 후 시인은 언어의 조형성과 말의 회화성, 말과 말이 만나 빚어내는 우연한 음악성에 매료됐다.

이제 시인의 시 세계에서 생략할 수 없는 주요한 형식이자 분기점이 된 ‘말놀이 시’는 ‘그림 시’를 시도하며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인이 서두에서 밝혔듯 이 그림 시집은 작품마다 시인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간직해 온 ‘한 문장’과 이를 통해 떠올린 심상을 한글로 그린 한 편의 ‘그림 시’로 구성돼 있다.

표제작 ‘쌍둥이자리 별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문장 곁에 ‘무’라는 단어를 반복해 그린 우주 공간과 쌍둥이자리가 놓여 있다.

최승호의 그림 시는 대부분 동식물들의 이름으로 그려져 있다. 시인이 오래 환경운동에 몸담았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그 이름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펭귄’, ‘사막여우’, ‘흑염소’부터 알락하늘소, 알락똥풍뎅이 등 서로 다른 종이지만 이름을 가족의 돌림자처럼 공유하는 ‘알락 친구들’, 금빛노랑불나방, 교차무늬주홍테불나방처럼 이름만으로 서로 다른 형태와 생물학적 연관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불나방들’까지, 그 종류와 표현 방식도 다양하다.

한편, 최승호 시인은 춘천에서 태어났다.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눈사람 자살 사건’ 등의 시집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말놀이 동시집’ ‘최승호와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 시리즈가 있다. 시선집 ‘얼음의 자서전’은 아르헨티나, 독일,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