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칼럼] 글로벌 식량안보 위기 철저한 대비책 강구를
[신아칼럼] 글로벌 식량안보 위기 철저한 대비책 강구를
  • 신아일보
  • 승인 2022.05.2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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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동물과는 달리 인류의 두뇌 역시 더욱 강력하게 진화했다. 이를 통해 굳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완전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필요가 없이 우리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폭력의 역할은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인 변화를 겪었다. 1만 년 전에는 폭력이 일상적이었다. 열 명 중 한두 명은 폭력으로 사망할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인간이 치른 전쟁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라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는 데에는 그리 훌륭한 가이드는 못 된다. 그러함에도 역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이드이다. 폭력은 분명 자멸해 가는 중이고, 이는 곧 전쟁이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과연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이언 모리스(Ian Morris)’ 교수가 2014년에 쓴 「전쟁의 역설」의 서문의 일부다.

이 책의 부제가 ‘폭력으로 평화를 일군 1만 년의 역사’란 데서 주제 의식이 드러나듯 전쟁은 ‘더 큰 사회를 만들었고, 그 사회는 더 강력한 정부에 의해 통제’되므로 결국 전쟁은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만들었다. 전쟁은 더 많은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게 되었다. 전쟁은 평화를 만들어냈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더 많은 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은 마침내 스스로 전쟁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전쟁의 공포와 고통은 결코 당사국 국민만의 몫이 아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빠른 일상 회복을 갈망해온 전 세계인들에게 더 큰 충격과 더 깊은 좌절 그리고 더 아픈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전쟁의 영향으로 국제유가와 식량,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지구촌 전체가 또 다른 빈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이제는 한 지역의 전쟁이 지구촌 전체로 강한 파급력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CNN방송은 지난 5월 18일(현지 시각) 이상 고온에 시달려온 인도와 파키스탄이 기후변화 탓에 기록적인 폭염을 겪을 가능성이 100배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날 영국 기상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2010년 4〜5월과 같은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올 가능성은 312년에 한 번꼴이었지만 기후변화를 감안했을 때는 이 확률이 3.1년마다 한 번꼴로 높아진다고 밝혔다. 국경을 접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최근 기록적인 고온에 시달리며 현지 주민은 일상생활까지 타격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더운 도시 중의 하나인 파키스탄의 신드주 자코바바드는 지난 5월 15일 51℃까지 치솟았고, 같은 날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일부 지역은 49℃를 넘어서기도 했다. 3〜4월에는 양국 모두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인도의 3월 평균 최고기온은 1901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121년 만에 가장 높았고, 지난달 파키스탄도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양국 4〜5월 기온이 최고치를 찍었던 2010년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홍수를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길어지는 데다 이상기온 등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 생산량 감소 등이 겹치면서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른 국제 곡물 가격은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식량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 가고 있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밀, 옥수수, 해바라기씨 등 2,000만t이 넘는 곡물을 수출하지 못한 채 창고에 쌓아두고 있고, 수확량과 파종 면적도 급감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세계 주요 곡물 생산국들도 기상 이변으로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인데다 내수시장 우선 공급을 이유로 식량 보호주의를 내세우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식량과 자원을 무기화하는 국제적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1위 팜유(Palm oil:종려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 생산국인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하는 등 주요 곡물 생산국들의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 폭등 여파로 자국 내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자 ‘자국 우선 공급’이라는 긴급 처방에 나선 것이다. 따라서 곡물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으로서는 식료품 물가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안정적인 식량 확보마저 걱정해야 할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곡물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인 우리나라로서는 식량주권을 지킬 대책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곡물자급률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0년만 해도 30.9%였지만, 정부가 식량안보를 정책 후 순위에 둔 탓에 2010년 25.7%로 떨어진 데 이어, 2020년 19.3%(유엔 식량농업기구 집계 기준)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 수준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시장에서 밀, 옥수수, 팜유 등의 수급 차질이 빚어진다면 우리나라는 곧바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인도는 지난 5월 14일 “식량안보가 위기에 처했다”라는 성명과 함께 밀 수출을 금지했다. 인도는 폭염에 따른 생산량 감소 우려와 함께 국제 밀 가격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국내 식료품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자 밀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전 세계 밀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공급량이 줄어든 뒤 인도가 유일한 ‘버팀목’이자 마지막‘동아줄’ 역할을 해왔는데 이마저도 끊기게 된 것이다. 인도의 수출중단 이유는 당연히‘식량안보 확보’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팜유 생산업자들이 수출에 치중하면서 내수시장 식용유 가격이 치솟고 품귀 현상마저 나타나자 지난 4월 28일 팜유 수출을 전격 중단했다. 여기에 더해 아르헨티나·이집트·헝가리·터키·세르비아 등도 줄줄이 주요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에 나섰다.

주요 7개국(G7: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서방 7개 선진국)이 인도의 이러한 수출중단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식량 보호주의의 거센 물결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세계 각국은 “우리부터 살고 보겠다”라는 극단적 ‘자국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사상 최고치 수준인 국제 곡물 가격을 추가로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밀 수출금지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지난 5월 15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가는 한때 5.9% 급등해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곡물가격지수는 올해 3월 170.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평년 수준보다 70%나 오른 것이다. 인도가 세계 밀 수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로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가중될 가능성을 높여 시장이 받은 충격이 컸다. 

국제 곡물가 상승은 각종 가공품·사료 가격과 밥상 물가를 자극해 경제난을 가중하게 된다. 

국제기구들이 잇달아 식량 위기를 경고한 가운데 자국 식량 보호를 앞세운 인도의 밀 수출금지는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금지 등과 함께 국제 식량 보호주의를 더 자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관련 수출 제한 등에 나선 국가만도 30여 국에 이른다. 국제 밀가루 가격이 치솟자 심지어 이란에서는 빵값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까지 번지고 있다. 

식량 무기화의 급속한 현실화로 수입국들은 심각한 ‘식량안보(Food security)’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식량(Food)은 무기(Fire), 연료(Fuel) 등과 함께 국가안보와 직결되는‘국가안보 필수 3F’로 불린다. 1991년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은 미국 등 서방 사회의 식량 봉쇄였다. 미국 등의 곡물 금수조치로 1,700만t의 밀과 옥수수 공급이 막히는 바람에 결국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말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도 식료품 부족에 따른 가격 폭등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다. 대부분 국가는 2007〜2008년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겪으면서 식량안보를 자국의 헌법이나 법률에 반영해 지키고 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0.2%(사료용 포함)에 불과하다. 쌀은 92%에 이르지만, 쌀을 제외하면 3.2%에 불과한 탓이다. 특히 밀의 자급률은 0.5%, 옥수수의 자급률은 0.7%로 국내 공급능력이 제로(0)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세계 7대 곡물 수입국으로서 세계식량안보지수는 점점 낮아져 지난해 순위는 32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기초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말로는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외치며 식량자급률 향상을 강조만 했을 뿐, 실제 자급률은 오히려 더 떨어져 사실상 헛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한국은 공산품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농업의 가치를 등한한 탓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농업을 항상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가 많은 밀, 콩, 옥수수 등 전략 작물의 자급률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국산보다 훨씬 싸다는 이유로 수입 물량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여온 결과다. 새 정부는 ‘식량주권 확보’를 국정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2027년까지 밀의 자급률은 7%, 콩의 자급률을 37%까지 늘리겠다고 제시했다. 반드시 실천해야만 한다.

곡물은 하루아침에 생산 기반을 늘리고 자급화를 실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반도체로 식사를 대신할 수도 없다. 우선 현 위기가 ‘식량 대란’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비상 수급 계획을 세우는 등 시나리오별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수입선의 다변화와 함께 곡물 수입의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10% 안팎에 머물러 있는 주요 곡물의 평균 재고율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권장 비율인 18.0%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또한, 쌀 중심의 식량비축제도를 밀·옥수수 등까지 확대하고, 안정적인 수입 유통망 확보를 위해 국제메이저급 곡물 수입업체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쌀 대신 밀·콩 등의 생산을 늘리는 등의 기초식량의 국내 생산 확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도 서둘러 펴야 할 것이다.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예산 책정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이행을 강제해야 한다. 더불어 수매 정책지원 강화와 주요 식량작물 별도 직불제 등을 통해 자급률이 낮은 주요 곡물의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영국 런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노먼 딕슨은 「군사적 무능의 심리학」을 통해 무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이 책에 따르면 지휘관의 무능은 무지가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고집하는 심리적 기제에서 비롯된다. 지휘관이 ‘약한 자아’를 가지는 경우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 쉽고, 이 성향은 자기를 과신하고 타인의 의견을 거부하는 원인이 된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과 대(對)러시아 방어전을 지휘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의 행동을 보면 두 가지 교훈이 읽힌다. 그것은 바로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이다. ‘결단’과 ‘용기’는 지도자의 기본자질이다.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를 승리로 이끈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장군은 그가 쓴 「전쟁론」에서 ‘결단’을 “정신적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로 규정하고, 이는 “신속 정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침공을 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은 위험을 감수한 “결단”을 내렸지만, 겁만 주고 회군할 수 있는 ‘결단의 기회’를 놓쳤다. 이제 푸틴은 암살을 두려워하며 위치를 숨기는 수세에 몰려있는 형국이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는 철모조차 쓰지 않고 전선에 나타나 병사들과 국민들을 격려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젠 푸틴의 전쟁을 끝내려는 ‘결단’의 차례가 되어야 한다. 

유엔(UN) 세계식량계획(WFP) 데이비드 비즐리(David Beasley) 사무총장은 지난 5월 18일(현지 시각) 유엔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는 세계 식량안보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항구 개방 허용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아 위기에 처한 세계 최빈곤층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심장이 있다면 제발 항구를 열어달라”고 개방을 호소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소한 우크라이나 항구를 개방하는 ‘용기’를 보여줘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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