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기억해야 할 5월의 그날...5.18 광주민주화운동
[독자투고] 기억해야 할 5월의 그날...5.18 광주민주화운동
  • 신아일보
  • 승인 2022.05.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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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푸름 인천보훈지청 보상과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지만 ‘어린이날’, ‘성년의 날’ 등이 있는 걸 보면 1년 열두 달 중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인 듯하다. ‘청춘’은 단지 젊은 시절만이 아니라 어떤 열정을 가졌을 때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히 짐작건대 1980년 5월 빛고을 광주도 ‘오월의 청춘’이 한창인 곳이었을 게다.  

1980년 우리 국민들은 유신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이른바‘서울의 봄’은 이러한 민주화의 물결이었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맞서 학생들은 1980년 봄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점차 민주헌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크게 일어났는데 5월 14일과 15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은 계엄령 상황에도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신군부가 중심이 된 정치 상황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각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계엄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신군부세력은 국민들의 저항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주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투옥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으로 집결하여 ‘비상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도심으로 진출했고 시민들은 시민군과 시위대에게 음식물과 생필품을 기꺼이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계엄군에 맞섰다. 그러나 계엄군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진압봉을 휘두르며 무차별 연행했고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열흘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종결된다. 

이렇게 역사의 한 사건으로서 공식적 기록은 종결되었을지라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으로 또 5·18 정신을 계승한 민주화 운동으로 일찍 져버린 ‘청춘’들이 있으며 아직도 행방불명자 또는 무명의 열사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기 광주의 참상과 실체는 알려지지 않아 오히려 ‘광주 소요 사태, 광주 사태, 폭동, 간첩’ 등으로 매도당해 한동안 그 위상을 찾지 못 하다 1990년에 와서야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1997년부터 국가 기념일로 지정, 2001년에는 관련 피해자가 5.18 민주 유공자로 등록되는 등 꾸준히 그 명예를 찾아가고 있지만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1980년 5월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이처럼 5·18 유가족들은 아물지 않는 기억 속에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과거의 일부로만 생각하고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를 있게 한 것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며 현재는 빛나는 청춘들의 희생으로 얻은 소중한 일상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뜨겁게 민주주의를 외치던 목소리와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 뒤섞인 1980년 5월의 그날 민주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분들의 용기를 되새기며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푸름 인천보훈지청 보상과 

[신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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