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이나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할 수 있다는 건 이제 상식에 가깝다. 급할 때 예금이나 보험을 헐지 않고도 당겨서 쓸 수 있으니 요긴한 제도다. 그런데 최근 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 내지 국민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4대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담보로 잡고 빌려준 돈이 1년 새 5000억원 가까이 늘면서 7년 만에 최대 규모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예금을 깨기는 아까우면서도 유동성을 더 확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숨겨진 대출 창구로 각광을 받는 모습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금리 인상 본격화로 신용대출 이자가 비싸지면서 예금담보대출을 향하는 수요가 확대되는 현상을 보노라면 입맛이 쓰다.
더욱이 이 제도가 요새 불어닥친 빚내서 투자(빚투)에 협력하는 제도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이 보유한 예금담보대출 잔액은 총 6조903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7.5% 증가했다고 한다. 액수로 따지면 4795억원이나 늘었고, 연말 기준으로는 2014년 이후 최대치다.
내 돈 내가 당겨서 쓴다는데, 혹은 내 예금 끌어다 내가 빚투를 한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은행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예금액 대비 90%에서 95%까지 돈을 빌릴 수 있는데, 이만큼의 거대한 대출이 숨어버리기가 쉽다는 맹점이 있다. 물론 통장에는 질권 설정 문구가 찍힌다. 하지만, 그야말로 은행에서 새로 '땡빚'을 내는 경우나 대부업체 등에서 돈을 쓰는 경우 대비 가족 등 주변에 대출 사실을 숨기기엔 훨씬 용이하다.
이는 빚투족들이 예금담보로 대출을 내 뭔가 도모해 보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기 쉬운 대목이다. 예금액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유동성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자, 쓰고서 없던 일로 하지 싶은 생각이 들기 쉽단 얘기다.
하지만 예금담보대출로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볼 경우 개인이 져야 할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투자에 실패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 담보로 잡힌 예금을 잃고 이자 문제 등으로 전에 없던 빚까지 질 수 있다.
예금담보대출이 몸집을 불리는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차주가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이 1%대에 그치기 때문이다. 당국이 이 문제를 짚어봤으면 한다. 물론 이자를 높이면 당장의 대출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도 이런 문제와 논의를 그저 이자를 더 많이 우려낼 기회로만 보지 말고, 고객 보호 차원에서 숙고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