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민음의 시 297번째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신간] 민음의 시 297번째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5.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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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음사)
(사진=민음사)

엄마,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비밀 아니야. 어차피 누구도 안 믿을 거야. 아빠를 심어 벚나무를 살렸다는 말을 누가 믿어? 언제든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말해도 좋아. ―「꽃나무의 가계」에서

첫 시집 ‘내가 훔친 기적’으로 유년 시절의 기억을 환상적 이미지를 경유해 풀어냈던 강지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를 세상에 내놨다.

시인은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비밀들이 가득 담긴 상자를 꼭 껴안고 숨기는 대신 상자 안에서 비밀이 아니어야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골라내 바깥에 펼쳐놓는다.

2일 출판사 민음사에 따르면 강지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는 민음의 시 297번으로 출간됐다.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기까지의 5년은 강지혜 시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현재에 부딪혔던 시간이다.

생면부지의 섬 제주로 이주하고,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는 동안, 강지혜 시인은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장면들을 길어 올리던 시선을 생생한 현재로 옮겨 왔다.

온통 처음 겪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족과 생업, 삶과 꿈에 대해 선뜻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득 품게 된 시인은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를 통해 차근차근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놨다.

이때 시인을 사로잡은 것은 비밀인 것과 비밀이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다. 비밀은 왜 비밀이 되는가? 무엇이 나를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고민 끝에, 꽁꽁 숨겨 두지 않는 것이 더욱 마땅했던 비밀들이 마침내 시의 꼴이 돼 세상에 나왔다.

시집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시 ‘꽃나무의 가계’에서부터 등장한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라는 질문에 화자는 그건 비밀이 아니라고, 그러므로 “언제든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말해도 좋”다고 답한다.

선언과도 같은 대답을 증명하듯 시집 곳곳에는 낱낱이 풀어헤쳐진 비밀들이 가득하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관계 속에서도 어쩌면 나와 너는 서로 등을 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나(부부), 눈물과 땀이 가득한 육아 일지 속 “우리라는 허상이/ 켜켜이 바스라진다”고 털어놓는 것, 집이라는 공간은 “삶도 떠날 수 없고/ 죽음도 숨을 수 없는” 지독한 곳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신혼)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비밀들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가슴을 내리치며 주먹을 깨부수며 태어난 노래”(시인의 말)가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한편 강지혜 시인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집으로 ‘내가 훔친 기적’이, 산문집으로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공저) 등을 펴냈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