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캡틴 킴의 동원, 2세의 동원
[기자수첩] 캡틴 킴의 동원, 2세의 동원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2.05.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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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킴’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을 쥐고 배 한 척으로 참치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 그룹 모태인 동원산업의 시작이다. 그는 자산총액 기준 국내 50위(공정거래위원회, 2021년)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을 일구며 국내 기업사(史)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 받는다. 

김 명예회장은 직원 3명과 배 한 척으로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0년대 외화벌이의 주역이 됐다. 1980년대 초반에는 국내 최초의 ‘참치캔’을 선보이며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참치캔 시장의 절대강자 ‘동원참치’의 탄생이다. 40여 년간 8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했고, 이는 그룹의 핵심 축인 종합식품기업 동원F&B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동원F&B는 국내 2위 식품기업(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명예회장은 마도로스(선원)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항해했다. 동원참치를 선보였던 1982년 그 해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에 진출했다. 2008년 미국의 최대 참치캔업체 스타키스트를 품으면서 동원산업이 세계 최고의 참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김 명예회장은 2000년대 초반 그룹 계열분리를 하고 장·차남에게 지분을 넘기며 엄청난 규모의 증여세를 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분으로 회사를 경영할 때는 지났다. 지분 경영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기업을 이끄는 오너의 책임과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뜻이다. 

다만 동원그룹의 최근 행보는 그의 말과 달리 가는 모습이다. 동원산업이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커진 탓이다. 양 사 합병비율은 1:3.8385530으로 이대로 추진되면 상장사인 동원산업 가치는 저평가 되고,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크게 높아진다. 동원엔터프라이즈 최대 주주는 차남 김남정 부회장, 2대 주주는 김 명예회장이다. 두 사람의 지분만 93%가량이다. 

일부 기관투자자와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은 이 같은 합병이 오너만 배불리는 구조라며 ‘불공정한’ 처사라고 강력 비판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소액주주들은 소송은 물론 ‘동원참치 불매’ 등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원그룹은 합병비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김 명예회장은 2019년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경영 퇴진을 선언하면서 “동원의 창업정신은 사회정의”라며 “앞으로도 이런 다짐을 잊지 않고 정도(正道)로 가는 게 승자의 길”이라는 말을 남겼다. 캡틴 킴의 동원과 2세의 동원은 과연 같은 것인지, 그리고 승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맞는지 혼란스럽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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