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하철은 안방이 아니다
[기자수첩] 지하철은 안방이 아니다
  • 이인아 기자
  • 승인 2022.03.24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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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로 60대 남성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친 20대 여성이 경찰에 잡혔다는 뉴스가 났다.

술에 취한 여성이 지하철 안에서 침을 뱉은 후 내리려 하자 남성이 말렸는데, 이 과정에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휴대전화에 가격당한 남성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퍼지면서 20대 여성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찍었다는 사실이 입방아에 오르는 지점이나, 법적인 잘잘못은 수사기관에 맡겨두기로 하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 본질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성이 침을 뱉지 않았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요즘 부쩍 호선을 가리지 않고 지하철 안에서 이런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자도 목적지까지 가는 30분 동안 지하철 안 맞은편에서 마른침을 계속 뱉는 여성을 목격했다. 정확히는 할머니였다. 며칠 안감은 듯한 머리에, 오래 안 갈아입은 듯한 옷차림을 한 할머니는 1분 간격으로 침을 연신 뱉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침을 신발로 문질러 나중에는 그 자리가 희게 변했다. 눈을 돌리고 싶었으나 왜라는 의문이 들어 지켜봤다. 마스크 속 입안을 언뜻 보니 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계속 되새김을 하고 그렇게 모인 침을 할머니는 고스란히 지하철 바닥에 버렸다.

이뿐만 아니다. 대선 후 지하철 승강장에 선 한 아저씨는 된소리 발음의 육두문자를 날리며 큰소리로 화풀이를 했다. “이 답답한 것들아. 이 xxxx들아”하면서 몇 분간 울분을 토했다.

만취해 넥타이를 풀어헤친 상태로 지하철 의자에 드러누워 이~씨, 저~씨를 찾은 아저씨도 간만에 볼 수 있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순간 욱하는 모습은 의도대로 상대방이 섬뜩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화장실로 가면 될 것을 굳이 스크린도어에 토사물을 쏟아붓는 사람은 대체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일까. 멀쩡히 있는 음료자판기에 너 죽고 나 죽고식으로 달려드는 이는 단지 음료수를 못 사 먹어서 한이 맺힌 탓일까.

뭐니 뭐니 해도 화룡점정의 주인공은 승강장 끄트머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일 테다.

이 구역 최강민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마냥 발악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초조함이 두려움으로 나타난 데서 생긴 상황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더 깔끔하고 안전한 지하철로 교체하는 사업이 진행된다. 지하철 현대화 사업도 중요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국민의 인식도 최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걸판진 것은 없다. 지하철은 안방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신아일보] 이인아 기자

inah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