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추사 김정희처럼 서금원 이재연을 모욕하나?
[기자수첩] 누가 추사 김정희처럼 서금원 이재연을 모욕하나?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2.03.1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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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는 성리학에 밝은 것은 물론 글씨, 그림에 능통했고 금석학(비석 등을 연구해 역사적 사실을 논하고 밝히는 학문)에도 큰 족적을 남겨 조선은 물론 청나라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일대 기린아였다. 그러나 그렇게 잘난 만큼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이라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비판을 넘어서서 불필요한 인신공격으로 자신과 생각이나 예술의 결이 다른 이들을 많이 공박했다. 그 죄과였을까? 결국 억울하게 역모에 연루돼 제주도와 북청에서 유배살이를 하기도 했다.

1840년 제주 유배를 내려가던 중에 해남 대흥사에 잠시 들르게 됐다. 초의선사를 만나 대흥사에 걸린 현판 글씨들을 비판했다.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 이광사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을 수 있는가?" 추사는 있는 대로 신경질을 부렸다. 초의는 그 극성에 못 이겨 원교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고 한다.

원교 이광사는 그야말로 연좌제의 억울한 족쇄로 귀양살이를 하다 죽은 인물이다. 성리학에서 다소 벗어난 양명학을 연구해 일가를 이룬 이로도 유명하지만, 글씨를 잘 써 명성이 두루 높았다. 백부의 역모 문제에 연좌돼 죽을 상황이 됐지만, "글씨를 좀 쓰는 재주가 있으니 살려 달라"는 그의 호소를 영조가 받아들여 유배만 보냈을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다. 왕실에서 인정한 그런 글씨를, 추사는 자기 기준에 안 맞는다며 상종 못할 저질 글씨쯤으로 폄하했던 것이다.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일이다.

1848년 12월 63세 노령으로 간신히 제주 귀양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른 추사는 초의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날 내가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개성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그는 외로운 귀양살이 9년에 체득한 것이라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평가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난데 없는 수장 교체론에 휘말렸다. 최근 대선에서 정권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가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등장하게 되면서 기존 정권의 임명직들이 대거 교체론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등 수장을 바꾸자는 것은 명분이 충분하다. 정책적 색깔을 맞춰 글로벌 경제난 해결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의 선장을 바꾸자는 논의도 비록 지나친 감은 있으나, 정책적 지원 필요성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서민금융진흥원은 그야말로 위기에 선 서민들의 금융접근성을 개선해 주는, 어느 정권 하에서도 하는 일이 같은 기관이다.

이런 곳의 수장을, 더욱이 금년 초 부임한 이재연 원장을 바로 갈아치우자는 논의는 명분도, 타당성도 부족하다. 그는 학자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지만 서민들의 금융 애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전문가로도 이름이 높다.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일하던 2019년, 그가 한 세미나에서부터 "외환위기 이후 신용조합마저 대출할 때 담보와 보증에 너무 의존하고 은행의 효율성과 편리함만 강조하다 보니 담보가 없는 사람들은 대출을 못 받는다"고 지적한 일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는 "당국이 담보를 잡지 않은 대출을 문제 삼기보다는 미국처럼 대출을 심사한 측의 의견도 참고하도록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가 서민금융진흥원장으로 일하면서, 지금 '상환평가모델 구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바로 2019년 논의했던 그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수장이 뜬금없이 교체되면 이 사업도 백일몽이 돼 버릴 것이다.

원교 이광사를 구박했던 추사 김정희처럼, 어느 '윤핵관'의 입에서 주요 금융 관련 기관들 수장들을 모두 갈아치우자는 소리가 쉽게 나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훗날 세상 사람들은 서민금융진흥원 문제를 두고두고 비판할 것이다. 누가 서민금융진흥원장 자리를 그저 논공행상의 의자 하나쯤으로 생각해 뺏으려 드는가? 누가 성심껏 서민을 위한 상환평가모델을 묵묵히 구축하고 있는 이재연 원장과 서민금융진흥원 사람들을 욕보이는가?

[신아일보] 임혜현 기자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