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세종시 갈등‘증폭'
친이-친박, 세종시 갈등‘증폭'
  • 양귀호기자
  • 승인 2009.11.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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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원안 VS 수정’ 내홍 조짐 … 정면대결 양상
정진석 “행정기관이 안가면 기업이 가겠느냐”

여당이 세종시 문제를 놓고 내부 갈등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 원안 추진' 원칙을 재확인한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친박(親朴)계 의원들이 세종시 수정 추진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반면, 친이(親李)계 의원들은 세종시 수정을 재차 강조하면서 정면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처음으로 밝히고 나선 것은 지난달 23일.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무슨 약속을 하겠는가, 당의 존립문제다"라며 세종시 원안 추진 의사를 밝혔다.

박 전 대표는 또 "원안에 필요하다면 플러스알파(+α)가 돼야 한다"며 "수없이 토의했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약속을 했으며 여야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정치는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강조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취임과 함께 세종시 수정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이후,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세종시 수정 추진을 요구하고 나선 분위기에서 이같은 박 전 대표의 반대의사는 파장이 컸다.

더욱이 한나라당 지도부에서도 밖으로는 '원안 추진'을 강조하면서도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하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혀 사실상 수정할 뜻이 있음을 밝혀온 상황에서, 당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지닌 박 전 대표가 정면으로 반대의사를 밝힘에 따라 만만치 않은 사태가 이미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31일 '백고좌대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내 개인적인 정치신념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자신의 의지를 확인했다.

박 전 대표는 또 "한나라당이 각종 선거에서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이를 수정하면)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약속했다는 논리 밖에 안된다"며, 정 총리의 세종시 수정 관련 면담 제의에 대해서도 "국민들과 충청도민에게 구해야지 나한테 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 불가' 뜻을 잇따라 명확히 하자 여권에서는 분열 조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세종시 관련 발언이 포함되지 않은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었던 2일에는 당내 친이·친박계 의원이 세종시와 관련해 각각 상반된 목소리를 내면서 선을 긋고 나섰다.

친박계 의원인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법제화를 통해 시작된 사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 어디있느냐"며 "(세종시를) 원안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얘기한 원칙과 신의, 신뢰와 약속의 문제를 떠나 민주주의 절차 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라며 "절차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행정기관에 플러스알파(+α)를 해서 덧셈을 해주면 될 것을 자꾸 뺄셈을 하려고 한다.

행정기관 안가면 거기에 기업이 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원은 또 "이것이 정말 큰 문제였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세팅할 때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했어야지 느닷없이 1년 반이 지난 다음에 수정안 내용을 채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친이계 의원인 같은 당 차명진 의원은 이날 또 다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세종시 수정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세종시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은 국민들이 해야 되는 거니까 국민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맞다"며 국민투표로 수정 여부를 결정하자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이와 함께 차 의원은 세종시는 '국회가 국민에게 한 약속'이라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분명히 국가적인 문제이고, 또 국가적인 문제를 위해서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문제는 맞다"면서도 "국가적인 장래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가와 충청도의 장래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아마 박 전 대표뿐 아니라 국민들도 수정안에 동의를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의 경우 최근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추진' 발언이 있기 전 한 케이블 방송에서 세종시를 수정 추진하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에 박 전 대표의 지지모임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 83%의 회원들이 김 의원을 친박에서 제외하자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내용을 밝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세종시 문제가 점점 여권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당내 친박계 의원이 당직을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나라당에서 제1사무부총장을 맡고 있던 이성헌 의원은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세종지 문제와 관련해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과연 집권여당의 모습인지, 공당으로서 민주주의 구현의 중심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을 전하면서 당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원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단 한 번도 공개적 토론이 없었던 상황에서 당론 변경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떠돌고 있다"며 "우리 당이 왜 이토록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스스로 짓밟고 가야 하는 것인지 애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당을 비판했다.

이같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는 다소 난처한 분위기다.

장광근 사무총장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분위기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