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아이히만
[기고] 한국의 아이히만
  • 신아일보
  • 승인 2022.02.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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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연구교수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이 말은 철학자이기도 한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주인공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절멸을 위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 수용소로 강제 추방하는 일을 맡았고, 가스실이 달린 열차를 개발한 것도 그였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된 후 전쟁범죄 등을 포함한 15가지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재판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냐는 질문에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라는 답변을 한다.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라고 취지로 한 그의 말은 당시에는 죄라는 인식조차 못 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아돌프 아이히만이지만 정신과 의사 6명은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고, 의사 중에는 자신보다 더 정상이며,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는 말까지 했다. 한  성직자는 그를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증오심이 강하지도 않았고, 심리적인 외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관심은 오로지 '승진'이었고 근면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지만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며 앞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다. 공무원을 사적인 업무에 동원하거나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수조 원의 개발사업에 입찰을 깜깜이로 하여 계약하고 일감을 몰아준 것 같은 의심스러운 사례도 있다. 인간에 의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낯설지 않다는 말처럼 주위에도 보면 도덕 불감증이 만연하고, 비도덕적 행위들이 별다른 의식 없이 행해진다. 그러다 발각되면 상부의 지시였고, 관행이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앞의 아이히만의 사례와 거의 판박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규모의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열어준다. 영향력이란 강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다수에서 소수로 흐르기 때문에 조직이라는 틀 속에서 불의를 보고 이를 세상에 드러낼 용기를 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단 한 명이면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아돌프 아이히만 사례는 하나의 개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인간의 특징인 사유하는 능력을 망각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 결과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한 분석은 세 가지 무능과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세 번째의 무능성은 곧 판단의 무능성(inability to judge)을 의미한다. 

 한편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의한 복종에 대한 실험’이나 1971년 필립 짐 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에서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악행을 주도했다. 착한 사람이 갑자기 상황의 힘에 대한 반응으로 악을 저지르거나 교도관이나 병적으로 수동적인 희생자 모습의 수감자로 돌변하는 사례를 이미 봤다. 누구나 악의 주범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평범한 사람도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사탄이 된다는 것이 루시퍼 효과다. 루시퍼 효과의 요점은 사람, 상황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시스템이 인간의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떤 악을 행할지는 이러한 상황에 좌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악인지, 바른 일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죄를 저질러야 꼭 유죄가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는 자체가 죄다. 그래서 악은 평범한 것이다.
 

/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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