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데이트 폭력과 살인의 차이
[기자수첩] 데이트 폭력과 살인의 차이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2.01.2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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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죽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남자친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죽었다. 어느 부모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이요, 누군가의 사랑하는 친구였던 그녀가 사망했지만 그 죽음에 대한 대가로 피의자가 받은 형량은 고작 7년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판사 자신의 딸이 맞아 죽었더라도 징역 7년을 선고할 것이냐고 말이다. 살인의 고의성이 없으며,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이라는 점이 참작이 됐을 것이라고 한다. 한 여성의 사망과 정상참작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내 가족이 사망했더라도, 또 그저 단순한 사망도 아닌 사랑하는 연인에게 폭행을 당해 죽음에 이르렀을 때 과연 7년이라는 형량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역시나 피의자 A씨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되자 방청석에서 딸의 목숨을 빼앗은 이의 재판을 지켜보던 숨진 여성의 부모는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으로 처리해야 한다”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딸은 죽었는데 딸을 죽인 살인범의 행위를 ‘살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부모는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성에 비해 체력적으로 약한 여성이 남성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갈등에 놓인 남녀가 신체적인 폭력사태에 놓였을 때 여성은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노출된 장애여성이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이 깨어나 또다시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할 것이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잠든 남편을 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은 여성의 행위가 계획적인 살인이라며 중형을 선고했지만 여성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남성에 대항할 수 없는 약한 여성, 더욱이 보호받아야 할 장애여성에게 가정폭력을 일삼아 온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이 깨어나는 것은 살인의 공포와 다름이 없음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장애여성은 끝내 수십 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이와 반대로 부부 싸움 중 남성이 여성을 살해할 경우, 화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피의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교적 낮은 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많았다.

이번 피해자 또한 유리벽이 흔들릴 정도로 폭행을 당하고, 폭력으로 인해 쓰러진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재차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이 고스란히 CCTV에 담겼음에도 법은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판단했다.

인터넷상에서도 피해자와 관련된 글에 ‘마포 데이트 폭력’ 사건이라고 명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사건은 단순 데이트 폭력이 아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사망한 여성의 가족들은 큰 충격과 슬픔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것도 모자라 쓰러진 피해자에게 연이어 폭력을 휘두르고 정신을 잃은 피해자의 늘어진 몸을 끌고 건물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남았는데도 법은 이번 사건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형법 제259조(상해치사):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해석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10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에서는 그보다도 낮은 7년형이 선고됐다. 유족의 억울함을 대신해 줄 검찰조차도 피의자의 혐의를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적시했다 한다.

A씨에게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검찰과 재판부. ‘법’의 정의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연인의 무차별 폭행에 희생된 여성의 부모는 재판이 끝나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피해자를 위한 법은 없는 것인가. 이 같은 나라에선 더 이상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