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우의 접시와 방역패스
[기자수첩] 여우의 접시와 방역패스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1.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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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여우가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대접했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대접에 보답하겠다며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두루미는 입구가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놨고 여우는 그제야 두루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배려의 중요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의 줄거리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를 둘러싼 정부와 미접종자 간의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여우와 두루미’가 떠오른다.

방역패스 적용 범위가 식당에서 대형마트‧백화점 등으로 확대되면서 미접종자들은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의 입장도 고려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1차 접종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접종을 완료하지 못했을 뿐인데 방역 정책으로 지나치게 일상을 통제당하고 있다고 이들은 호소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미접종자가 된 지인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19 발병 이전부터 미세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늘 마스크를 착용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마스크를 두 개씩 착용하며 회사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 ‘방역 우등생’이었지만 백신이 도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해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게 된 지인은 부작용을 우려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고 ‘방역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접종 예외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아 점점 더 갈 수 있는 곳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이다.

정부는 미접종자라도 PCR 검사를 받고 ‘음성확인서’를 제출할 경우 접종 완료자와 동일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48시간의 유효기간이 적용되는 음성확인서 특성상 제약없는 생활을 위해서는 사흘에 한 번씩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확진자가 늘어난 이후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검사 대기시간과 개인일정 등을 고려하면 이는 쉽지 않다.

물론 ‘공공의 안전’과 ‘미접종자 보호조치’라는 정부의 입장도 일견 타당하다. 거리두기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확산세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백신이 중증화율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만큼 접종을 권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아무리 유용한 것이라 한들 이미 한차례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에게 백신은 두루미의 경우처럼 자신의 입 모양과 맞지 않는 접시에 담아진 음식에 불과하다.

많은 미접종자들이 채용과정에서 불발되거나 주변인들에게 ‘방역 무임승차자’로 눈총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얘기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접종자 완료자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까지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많은 접종 완료자들이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접종을 마치거나 심지어 접종 후 통증으로 병원 신세까지 진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또 출장 등 업무에 제약이 없는 접종 완료자를 선호하는 사기업을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다.

다만 사기업 혹은 일반 국민들과 정부는 다르다. 정부가 미접종자들의 일상을 통제하며 사실상 ‘방역 고위험군’으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은 아무리 안전을 위한 조치라 하더라도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할 문제다.

미접종자들은 감염 위험이 높은 A군이기 이전에 사회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정부에게는 일상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민이다. 때문에 그들이 지나치게 일상을 제약받고 이로 인해 ‘사회적 낙오자’가 되지 않기 하기 위해서는 ‘방역패스’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접종을 완료하고도 확진되는 ‘돌파감염’과 변이 바이러스를 생각하면 백신이 절대적인 해결책은 아닌 상황이다. 무엇보다 백신이 도입되기 전 정부는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만 철저히 해도 코로나19 예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또 백신 미접종에 따른 패널티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마스크를 두겹씩 착용해도 출입할 수 없는 시설이 늘어가는 상황에 미접종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단지 미접종자라는 이유로 마스크도 벗지 않는 시설에 출입할 수 없는 정책 수립과정에서 미접종자들의 ‘기본권’은 얼마나 고려되고 ‘사회활동’은 얼마나 배려됐을까. 정부는 미접종자들이 ‘보호조치’라는 명분에 ‘통제’라고 맞서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 역시 방역패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적용 예외 대상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방역패스를 새롭게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부작용 등 피치 못할 사유로 백신을 접종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구제책이나 통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