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유 용도별 가격 차등 추진…제도 현실화 '안갯속'
정부, 우유 용도별 가격 차등 추진…제도 현실화 '안갯속'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12.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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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원유 자급률 하락·소비침체 극복 '낙농산업 발전대책' 발표
음용유·가공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낙농진흥회 의사구조 개편 골자
젖소농가 등 생산자단체 '실질적인 쿼터 감축, 소득 감소 우려' 반발 커
어느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유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어느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유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원유(原乳) 가격을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차등 적용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하지만 젖소농가 등 생산자단체 반발이 커 현실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낙농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현재의 생산비 연동제를 대체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고 낙농진흥회 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낙농산업 발전대책’을 30일 발표했다. 

정부는 대책 발표를 통해 낙농산업이 지난 20년간 국산 원유 자급률의 지속적인 하락과 소비 침체, 시장개방 확대 등으로 위축된 가운데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산 원유 자급률은 2001년 77.3%에 달했으나 지난해엔 48.1%로 30%p가량 하락했다. 이는 소비구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생산이 이를 쫓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마시는 우유(음용유) 소비량은 2001년 36.5킬로그램(㎏)에서 지난해 31.8㎏으로 줄었다. 하지만 치즈와 버터,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소비는 같은 기간 63.9㎏에서 83.9㎏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국내 생산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비싼 음용유에 맞춰지면서 국내산 유가공품은 값싼 수입 가공 유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린 상황이다. 지난 20년간 국내 생산은 2001년 234만톤(t)에서 지난해 209만t으로 감소했으나 수입량은 같은 기간 65만t에서 243만t으로 역전했다. 

더욱이 2026년부턴 미국·유럽산 치즈와 백색시유 관세가 철폐되는 것을 시작으로 유제품 시장 개방은 더욱 확대돼 저가의 유제품 수입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만일 음용유 소비가 계속 감소하고 있음에도 낙농가를 중심으로 음용유 위주 생산이 지속된다면 국내 생산은 현재 연간 음용유 총 소비량인 175만t 수준 이하로의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음용유 중심 경직된 쿼터제, 우유자급률 하락 주 원인

국내 낙농산업은 쿼터제와 생산비 연동제, 정부의 차액보전을 주축으로 유지되고 있다. 원유 생산자인 젖소 농가들은 본인이 연간 생산할 수 있는 원유량을 쿼터로 가지고 있다. 쿼터 범위 내에선 정상가격으로 전량 유업체에 납품이 가능하도록 보장됐다. 이것이 원유 쿼터제의 주 내용이다. 

농식품부는 콜드체인·유제품 가공 등 관련 기술 발전으로 현재는 쿼터제 의미가 약화됐으며 유럽의 경우 2015년부터 쿼터제가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아직 음용유 가격만 적용하는 경직된 쿼터제를 운영해 음용유 소비가 줄고 유가공품 소비가 늘어나는 지금의 소비 트렌드에선 실제 생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진단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운용되는 원유 쿼터량은 연간 222만t이다. 국내 음용유 소비량이 175만t인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 336억원의 차액보전을 했지만 유업체가 실제 구매하는 물량은 210만t 내외에 불과하다.

원유 가격을 생산비에만 연동해서 조정하는 생산비 연동제는 2013년 도입됐다. 과거 우유가 부족한 시절 생산을 늘리기 위해 도입했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최근엔 음용유 소비가 줄지만 원윳값이 떨어지지 않아 시장경제 원리에 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재 국산 원유가격은 지난해 리터(ℓ)당 1083원 수준으로 같은 기간 미국의 491원, 유럽 470원보다 높은 편이다.

농식품부는 이런 구조가 우유 자급률을 낮추고 있다고 판단하고 음용유와 가공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에 나선다. 현재는 용도 구분 없이 쿼터 내 생산,납품하는 원유에 음용유 가격인 리터당 1100원 수준을 적용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용도별로 가격을 차등 적용하되 음용유는 현재의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가공유는 더 싼 가격을 적용해 농가 소득이 감소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업체가 더 많은 물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관련 제도가 적용되면 우유 생산량이 늘어나 자급률은 현재 48%에서 최대 54%로 상승할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생산자 반대하면 회의 열 수 없는 낙농진흥회

농식품부는 또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성을 현재 15명에서 23명을 늘리고 정부와 학계, 소비자, 변호사, 회계사 측 인원을 추가하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15명으로 구성됐다. 생산농가 대표가 7명, 유업체 대표 4명, 소비자 대표 1명, 학계 1명, 정부 1명, 낙농진흥회장이다. 

낙농진흥회 정관에 따르면 이사의 2/3이상(10명 이상)이 참석해야 이사회를 개회할 수 있다. 또 참석 이사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하다. 생산자 대표 7명이 반대하는 안건의 경우 이사회 개의조차 할 수 없어 불합리하다는 게 농식품부의 주장이다. 

아울러 생산자 측이 반대하면 이사회 개의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개편하기 위해 ‘이사의 3분의2 이상 참석’이란 개의 조건도 삭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생산자단체는 정부 개편안에 대해 반대한 상황이다. 원유 생산량 증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안은 실질적인 쿼터 감축인 만큼 농가 소득이 줄 것이란 게 낙농가의 주장이다.  

생산자단체들은 원유 생산자율권 보장을 위해 생산자 중심의 전국 단위 MMB(Milk Marketing Board, 생산자 대표조직이 모든 유업체와 가격․물량을 협상하여 결정하는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권재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낙농산업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산업 전반에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하다”며 “낙농가와 유업체 모두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보지 말고 20~30년 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바람직한 낙농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고민해 달라”고 말했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