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외환시장 리스크 자초하는 한은
[데스크칼럼] 외환시장 리스크 자초하는 한은
  • 이영민 경제부장
  • 승인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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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23일 미 연준(Fed, 연방준비제도)과 ‘상설 FIMA Repo Facility(이하 피마)’를 필요시 이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피마 합의로 한은이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연준으로부터 필요시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거래한도는 600억 달러 규모다.

그런데 한은은 불과 일주일 전인 이달 16일 한미 통화스왑 계약 종료를 설명하며, 특별한 연장의 이유가 없어 종료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금융·외환시장 상황과 강화된 외화유동성 대응역량 등을 감안하면, 한미 통화스왑 계약 종료로 인한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종료 배경의 핵심이었다.

이날 이주열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기자간담회’ 질의응답에서 통화스왑 종료 배경과 관련한 질문에 “무산됐다고 하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연장하려 했다가 실패했다는 뉘앙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간 연준과 연장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작년 체결 상황과 지금의 금융 시장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연장할 특별한 유인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미 양측이 모두 이에 대한 공감대를 가졌다고 부연했다.

특히, 최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 후 미국이 내년 금리를 세 차례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은 동요 없이 안정을 되찾았다며 통화스왑 종료 배경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통화스왑은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필요시 원화와 달러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마는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맡기는 것이라 전체 외환보유액은 늘어나지 않는다. 다만, 달러를 현금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담보의 형태는 다르지만 통화스왑이나 피마는 모두 미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한 계약이다. 통화스왑을 현재의 외환시장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연장하지 않았다는 이 총재의 설명과 피마 합의를 알린 시점은 불과 일주일 시차다.

외환시장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로 피마 보다는 통화스왑이 먼저라는데 이견이 없다면, 연장의 필요성을 부정한 직후 피마 합의를 알리는 건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순되는 중앙은행의 행보에 깊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외환시장의 불안이 상존해 한미 통화스왑 재연장을 미국 측에 요구했지만, 미 측의 공감대 부족으로 결국 무산됐다고 솔직히 알리는 것이 시장에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FOMC 정례회의의 워딩을 주시하던 시장이 이후 불확실성을 털어버리고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이유는 연준에 대한 신뢰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제거됐으니 시장은 다음 이벤트를 소화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현재 국내외 금융시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솔직한 메시지를 던져야 각각의 경제주체들이 호재건 악재건 이에 따른 합리적 대응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국민들을 상대로 왜곡된 신호를 준다면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나 플라시보 효과를 노렸다면 더더욱 우스운 얘기다.

최근 한은 담당자들과의 수차례 통화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었지만, 한미 통화스왑 배경에는 미국 측의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신흥시장이 겪었던 긴축발작에 대한 기억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달러 유동성 부족에 따른 결과였다.

시장은 심리다.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지난 11월말 기준)이 역대 최대치인 4639억 달러라며 장밋빛 전망으로 시장을 호도한 후, 준비하지 못한 위기상황에 봉착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학계에서 GDP 대비 28%에 불과한 한국의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점, 국제결제은행도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9300억 달러로 제안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시장을 오판할 수 있는 왜곡된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시장 파괴행위다.

youngmin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