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적극행정 실종이 부른 '왕릉뷰 아파트' 논란
[기자수첩] 적극행정 실종이 부른 '왕릉뷰 아파트' 논란
  • 남정호 기자
  • 승인 2021.12.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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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서 각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은 저마다 적극행정을 통해 발굴한 대국민 지원 성과를 내놓고 있다. 

적극행정이란 공무원이 불합리 규제 개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행위를 뜻한다. 

문화재청도 적극행정에 열심이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4일 시각장애인의 문화유산 접근성을 높인 '시각장애인용 촉지도(점자 안내도) 및 탄소 절감형 안내판 개선' 등을 담당한 4분기 적극행정 유공자에게 포상했다. 

문화재청은 작년 7월 적극행정 추진으로 소중한 문화재를 보호하면서 국민 재산권을 합리적으로 지키고자 고도 지정지구 보존유적지에 대한 손실보장 지원과 적극행정위원회 신설 등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 사태에서 문화재청의 적극행정은 찾아볼 수 없다. 

2017년 1월 문화재청은 관보를 통해 문화재 보존지역 500m 내에 짓는 높이 20m(7층가량) 이상 건축물은 문화재청의 개별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고시했다. 이 고시 내용은 김포 장릉이 있는 김포시에만 전달됐다. 왕릉뷰 아파트가 지어지는 검단신도시를 담당하는 인천시 서구는 이런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

건설 관련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고시와 문화재청의 고시가 상충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국토부는 관보를 통해 검단신도시 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한 개발·실시계획 변경 승인을 고시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에 나온 국토부 고시에도 문화재청 고시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인천 서구에 2017년 강화된 고시 내용을 전달했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고시 개정 과정에서 김포시가 인천 서구로 의견조회를 진행하는 등 사례가 있어 김포 장릉 주 소재지인 김포시에만 고시 개정내용을 통지했다고 답했다.

국토부 고시와 상충 문제에 대해서는 국토부 고시에 관해서는 국토부에 문의할 사안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세계문화유산을 지킨다는 문화재청의 명분은 압도적이다. 세계문화유산 김포 장릉의 경관을 해치는 아파트 철거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1만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했다. 전문가들도 문화재 보존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그러나 적극행정의 부재가 만들어낸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는 아파트 수분양자들에게 돌아간다. 내년 6~9월 입주예정일에 맞춰 전세 계약이나 자금조달 계획을 세운 이들은 공사 지연 등 여파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일부 철거가 현실화하면 철거되는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의 재산권 피해는 막심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아파트들은 문화재청이 강화된 고시를 내놓고 2년 뒤인 2019년에 착공과 분양에 나섰다. 2017년 문화재청 고시가 인천 서구에 전달됐다면, 국토부 고시에라도 반영됐다면, 인허가 과정에서 관련 고시를 살폈더라면 이번 사태를 막을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적극행정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요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sout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