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웨얼 아 유 프롬?
[기자수첩] 웨얼 아 유 프롬?
  • 강민정 기자
  • 승인 2021.12.14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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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얼 아 유 프롬(Where are you from)?"

너는 어디서 왔니?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이름  말하기 다음 쯤 배웠던 문장이다. 보통 물으면 대답하기 마련인데, 요즘 대선후보들은 묻지 않아도 먼저 알려준다. 재밌는 건 사람은 한 명인데 고향은 한 서너개쯤 된다는 거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줄곧 '충청의 아들', '충청은 내 뿌리' 등을 언급하며 충청 대망론을 띄우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개최된 충북·충남도민회가 공동주최 행사에 참석해 "충청은 내 선대부터 500년간 살아온 내 뿌리이자 고향"이라며 "내년 3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충청인의 명예, 자존심을 확실하게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주최 초청간담회에서는 "내게 호남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절대 호남 홀대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루 만에 고향이 연달아 두 곳이나 생겨난 셈이다. 

고향의 사전적 뜻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등이다. 윤 후보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태어났다. 학창 시절은 물론 대학까지 모두 서울에서 졸업했다. 거칠게 분류하면, 사실 그의 고향은 서울 한 곳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고향은 경북 안동으로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민주당에서 몇 안 되는 TK(대구·경북) 출신이다. TK는 민주당에게 험지로 꼽힌다. 이 후보도 선거 국면에서 자신이 '안동 사람'임을 거듭 강조하며 표심을 호소하고 있다. 

이 후보는 고향으로 명확한 한 곳을 지명하는 대신 옷을 자주 갈아입는다. 충청에 가서는 '충청 사위'가 되고, 전북에서는 '전북의 친구'라고 자칭한다.

모든 대선후보들이 전국 팔도를 자신의 고향, 혹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등 존재로 일컫는 배경은 이해간다. 지역 연고를 강조해 친근감을 얻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대선은 전국구 승부이니, 모든 곳의 표심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우리 지역 사람', '우리 사위', '내 친구'를 뽑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대선주자들의 팔도 안으로 굽을까. 하루에도 고향이 몇 개씩 생겨나는데 안으로 굽을 팔이 남아날까 싶다. '집에 있는 유일한 변호사여서' 교제 살인을 저지른 조카를 변호한 삼촌이라면, 빙부모와 친구의 허물을 보고도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채 손쉽게 눈감아 버리진 않을까. 친근감만 앞세운 대선 전략에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mjk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