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CEO 연임 전쟁, 결자해지와 쾌도난마 사이
금융권 CEO 연임 전쟁, 결자해지와 쾌도난마 사이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12.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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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내 인사 파장 가능성 유독 커진 2021년 연말 곳곳에 '살얼음'
소송·징계 여파 하늘 무너져도 나만의 메리트 있으면 솟아날 구멍

연말이 다가오면서 금융권 CEO들의 거취 문제, 그 중에서도 이미 한 차례 별의 자리에 등극한 이들의 연임 내지 재연임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 카드, 보험 등 업권을 막론하고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특색있는 '연임 사유서'가 적잖아 관심이 모아진다.

우선 전통적인 인사 배경인 실적 이슈가 세간에 오르내린다. 물론 소송이나 징계 등 이슈도 CEO 개개인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여기에 2021년 세밑의 특징이라면, 그룹 내 구도 변화에 따른 연쇄 이동 가능성도 유의해야 할 요소로 꼽히면서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개별 회사의 체질 개혁 등 추가 과제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지나간 일인 이번 실적보다 다음을 기약하는 데 더욱 무게추가 기우는 경우가 적지 않아, 누가 적임자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임 성공이 아니어도, 다른 자리를 통해 중책이 주어질 가능성까지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고차방정식이다.

실적 면에서 선방하는 것이 기존에 배운 과목들을 챙기는 것에 가깝다면, 변수가 연달아 터지는 상황에 각종 리스크를 관리하고 인사이트를 보여주는 것은 새로 과목을 만들어가는 역할에 비유할 만하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경제 상황에서 회사의 생존의 문제를 책임지는 것은 쉽지 않다. 유효한 자기만의 경쟁력, 그리고 그걸 발휘할 수 있는 쾌도난마의 필요성이 더 중요하다. 세밑을 앞둔 지금, 금융권 CEO들의 거취문제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은행장 연임 여부, 지주 회장·부회장 연결되는 '큰 그림'

우선 은행 부문에서는 새 KB국민은행장의 발탁 스토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허인 행장의 4연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1일 이재근 현 영업그룹 이사부행장이 차기 행장으로 추천됐기 때문이다.

이재근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가 2019년 뉴욕 지점 내에 IB 유닛을 개소했을 때 은행 전무 자격으로 참석,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오른쪽 끝).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이슈에 은행을 대표해 참석한 기록사진이라 눈길을 끈다. (사진=KB국민은행)
이재근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가 2019년 뉴욕 지점 내에 IB 유닛을 개소했을 때 은행 전무 자격으로 참석,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오른쪽 끝).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이슈에 은행을 대표해 참석한 기록사진이라 눈길을 끈다. (사진=KB국민은행)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관련 구도가 함께 엮여 있는 이슈인 차기 행장 교통정리가 이처럼 다이내믹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은행은 2년 연속 리딩뱅크 자리를 지키는 등 안정적인 이익 증가를 이어가고 있고, 그룹 통합 디지털 플랫폼인 'KB스타뱅킹' 전면 개편 등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KB 측은 이재근 현 이사부행장을 차기 행장감으로 점찍었다. 지난해 부행장 인사 때에도 승진자 중 가장 연소해 시선을 모았지만, 이번에 차기 행장으로까지 떠올랐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은행계 시각이 대두된다.

그는 1966년생으로 정식 선출되면 최연소 은행장이 된다(인터넷전문은행 제외).  경제계 전반이 팬데믹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체질 개선을 적극 모색하는 기류가 있었는데, 이것을 보수적인 은행계가 수용한 셈이다. 더욱이 은행계에서는 가장 큰 조직인 동시에  KB에서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보고 있다.

'포스트 윤종규' 준비 작업면에서도 이번 차기 행장 건을 해석하는 시각도 대두된다. 허 행장이 4연임 대신 지주 부회장으로 가게 되지만, 사실상 하던 역할을 계속하는 혹은 더 막중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 큰 변화구를 넣자는 공감대가 허 행장을 행장 그 이후로 밀어올린 셈이라, '부회장 트로이카 시대'로까지도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부회장과 허 행장에 더해,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까지도 이번에 함께 부회장에 승진시킬 가능성도 거론된다. 

허인 KB국민은행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시장에서 착한 소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KB금융그룹)
윤종규 KB금융 회장(사진 오른쪽)과 허인 KB국민은행장이 시장에서 착한 소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KB금융그룹)

하나금융지주는 김정태 회장의 나이 문제 등으로 차기 판세 짜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인데, 회장 나이는 만 70세를 넘길 수 없다는 내부 지배구조 규정과 함께 김 회장 본인도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차기 주자로 함영주 부회장과 지성규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등이 두루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채용 관련 재판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쪽은 지주 회장이나 행장 임기 문제에서 아직은 자유롭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내년 12월,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은행권에서는 민영화에 성공해 잔칫집 분위기인 우리보다는, 기쁜 중에도 와신상담을 꾀하는 신한 쪽에 더 시선을 준다. 물론 채용비리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조용병 회장이 지난 22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여유를 갖게 됐다는 점은 중요하다. 법률심인 대법원에 검찰이 굳이 사안을 끌고 간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포인트는 그 다음에 있다. 조 회장으로서는 이번 재판 무죄 판결로 명예를 되찾았을 망정, 소송 대응에 여력을 일부 낭비한 게 아무래도 뼈아프다. 실적은 지금도 우수하지만, 2023년 3월까지 남은 임기는 자기 능력을 100% 하얗게 불태우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는 것. "KB금융과의 리딩금융그룹 타이틀 전쟁을 후반전에서 뒤집어 명장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어할 여지가 크다"는 풀이가 그래서 나온다.

신한금융그룹의 퓨처스 데모데이에 참석한 조용병 회장(왼쪽), 진옥동 행장. (사진=신한은행)
신한금융그룹의 퓨처스 데모데이에 참석한 조용병 회장(왼쪽), 진옥동 행장. (사진=신한은행)

따라서, 조 회장 임기보다 조금 앞인 2022년 연말 임기가 종료되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에 시선이 옮겨진다. 진 행장이 임기를 먼저 연장하면서, 다시금 조 회장의 성과 올리기를 보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단기적으로는 추가 연임, 장기적으로는 차기 회장 후보군에 오를 여지가 회자되는 진 행장은 일본SBJ 현지 근무를 하며 글로벌 경제 감각을 쌓은 '일본통'이다. 취임 이후 안정적인 성과를 냈을 뿐만 아니라 라임펀드 사태 등도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면죄부를 얻어내, 강단과 시대정신을 모두 갖췄다는 평도 듣는다. 

◇ 증권사 연임 안정적…실력파들의 낭중지추

올해 말 CEO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 하이투자증권 등이다. 우선 KB증권에서는 박정림, 김성현 사장 두 사장이 2018년 각각 자산관리(WM), 기업금융(IB) 부문을 맡으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이후 연임에 성공했다. 

두 대표는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징계를 통보받았음에도 연임에 성공해 탄탄한 입지를 증명한 바 있다. 아직 두 대표에 대한 징계 절차는 금융위원회 심의·의결이 남아 있기는 하다.

이영창 신한금융투자 사장. (사진=신한금융투자)
이영창 신한금융투자 사장. (사진=신한금투)

하지만 이 문제(금융위 징계)보다 KB금융그룹 내부의 차기 회장 발탁 구도와 연쇄 CEO 인사 문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영창 신한금융투자 사장도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된다. 다만 신한금융투자가 견조한 실적을 거둔만큼 이 사장은 사실상 연임 안정권에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사장은 대우증권 출신으로 2014년 대우증권 사장 물망에 오를 정도로 이미 오래 전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왔고, 2020년 연말 신한금융투자 지휘봉을 잡았다. "중개, IB, 기획 등 증권사의 전 파트를 섭렵한 드문 인물이라, 외부에서 오신 분이지만 존경스러운 상사"라는 내부 호평이 있다. 

김경규 하이투자증권 사장의 임기도 올해 말 결정되지만, 하이투자증권이 DGB금융 품에 안긴 직후인 2018년부터 줄곧 우수한 실적 개선 효과를 이끌어 온 인물이 김 사장이라는 점에서 교체를 반드시 할 필요는 적다는 분석도 있다. 

◇보험과 카드, 실적 엇갈리는 가운데 '안정 키워드 부각'

허정수 KB생명보험 사장의 세 번째 연임 여부는 실적과 안정적 관리자론 사이를 오갈 전망이다. 올해 KB생명의 실적 지표는 좋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는 전속 채널을 없애고 법인 보험 대리점(GA) 채널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손실이 일어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보험업계에서는 방향성 자체에서는 그가 맞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즉, GA 채널 정비는 결국 제판 분리(제품, 즉 금융상품 설계와 판매 영업의 기능 분리)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최상위권 규모의 회사들을 빼고는 효율성상 적합한 카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그룹에 인수된 상황인 푸르덴셜생명도 자회사형 GA 설립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전체적인 기조와 그룹 내의 신망 문제에서 다음 임기 연장 여부를 봐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이 같은 해석은 의미가 크다.  

허정수 KB생명보험 대표이사 사장이 필수노동자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진=KB생명보험)
허정수 KB생명보험 대표이사 사장이 필수노동자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진=KB생명보험)

권태균 하나손해보험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는 본인 임기인 내년 3월보다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 올 연말에 하나금융그룹 정기 인사에서 임원 인사들의 운명이 큰 폭으로 바뀔 여지 때문이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윤열현 교보생명 사장은 어피너티컨소시엄(FI)와 풋옵션 분쟁 법적 분쟁 중인 상황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해 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분쟁과 그의 연임을 연관짓는 것은 무리한 해석론"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다만 윤 사장이 무게중심을 잘 잡아주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약간 다른 각도의 평가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최근 풋옵션 분쟁에 증인으로 나온 자리에서 "주주간 분쟁으로 회사의 손해가 지속되고 있었고, 회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행부가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는 이사회의 요구도 있었다"며 고발 결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 그의 고심과 어려운 역할이 여기 모두 녹아 있다는 평이 나온다.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사진=롯데카드)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사진=롯데카드)

올해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은 이미 한 차례 연임을 했지만, 실적 다각화를 통해 우수한 실적을 기록해 다시 한 번 도전해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 사장이 KB금융그룹의 중심 인물인 만큼 지주사 내 핵심 보직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별개의 변수다. 

권길주 하나카드 대표이사와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이사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이고, 두 인사 모두 실적 급성장과 로카 카드의 100만장 발행 이슈 등으로 폭풍권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조 대표와 롯데의 선전을 두고 "치열한 상품 경쟁 와중에 세트카드인 로카 시리즈를 통해 혁신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호실적까지 기록하는 등 경영능력을 전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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