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뜨거운 이상주의가 잉태한 ‘경제위기’
[데스크칼럼] 뜨거운 이상주의가 잉태한 ‘경제위기’
  • 이영민 경제부장
  • 승인 2021.11.05 06: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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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들은 정치, 외교, 국방, 사회,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무언가 심볼라이징(symbolizing) 가능한 정책을 찾는다. 그리고 국민들의 최우선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먹고 사는 문제’ 결국, 경제 정책에 승부를 건다. 정치 역사에 무언가 뜨거운 한 페이지를 남기고 싶은 간절한 욕망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박정희 정권.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해 금융실명제와 토지거래실명제를 도입한 김영삼 정권. IMF 국난을 극복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며 현실 속에 통일의 꿈을 선사한 김대중 정권. 공과를 떠나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강력한 상징성을 갖는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톺아보면 언급하지 않은 다른 정부에서도 무수한 상징화 시도가 있었지만, 대체로 일반 국민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무엇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책 우선순위로 밀어붙였던 경제정책은 부동산, 탈원전, 최저임금 문제로 정리할 수 있겠다. 세 가지 모두 강력한 파급력을 갖춘 상징적 정책이다.

정확하게 스물 몇 번인지도 헷갈리는 부동산 대책은 대체로 역대급 집값 상승이라는 오명을 남긴 문 정부의 대표적 실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집값 상승은 곧바로 주거비 상승으로 연결되며, 물가상승기인 현재 민생경제를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강남 아파트값에 올인한 부동산 규제 정책은 출발부터 균형감을 잃었다.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부동산 이슈들에 발목이 잡혀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탈원전을 기치로 야심 차게 출발한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경우 막대한 매몰비용은 물론, 한전과 한수원 등 발전 공기업의 눈덩이 적자를 불러왔다. 공기업의 적자는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에서 내놓은 자료에는 2050년까지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높일 경우, 전기료가 120% 인상된다는 추산치가 담겼다. 공공요금 인상 등 고물가의 악영향이 동반될 것이다. 무역 경쟁력 약화도 예상된다. 높은 발전단가가 상품가격에 그대로 전이될 것이고,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고용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파격적 인상률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비정규직 확대와 최저임금 수준 근로자 대량 양산이라는 왜곡 현상을 가져왔다. 급격한 인상률로 고용의 규모와 질 모두 악화된 것이다. 문 정부 5년간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4%다. 1988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후 역대 정권 평균 인상률 중에서 이명박 정권의 5.2%보다 조금 높다. 용두사미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 정부의 세 가지 대표적 경제정책은 공통점이 있다. 파급력을 갖는 상징성이 매력적이다. 또, 이상적인 정책들로 방향성 측면에서는 딱히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머릿속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불편함의 이유는 정책의 과격한 급진성 때문이다. 드높은 이상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부작용 최소화에 있다.

논어의 자로(子路) 편에서 공자는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이라 말한다. 급하게 성취하려면  되레 일을 그르친다는 건데, 문 정부의 3대 경제정책은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이 일반적이다.

상징적인 경제 성과물을 서둘러 내놓고자 검증되지 못한 설익은 정책들을 급작스럽게 추진했고, 조급함 속에 수십 차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으로 나라 경제를 왜곡시켰다. 이 과정에서 급격하게 추락한 정책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들을 진영논리로 내몰았다.

고전파 경제학을 근대화해 신고전파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은 인간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도구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경제정책도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경제정책이 정권의 상징화 작업의 도구로 전락하면 안 된다.

통화주의 경제학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작은 정부론’을 주장하며, 정부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기장 안팎을 관리하는 진행요원 정도의 역할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법과 질서를 유지해 공정한 시장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면 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후보 세우기가 마무리 수순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내년 3월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확고한 경제 철학으로 무장한 ‘신념의 정치인’이 등장하는 무대가 되길 기원한다.

youngmin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