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워드 슐츠의 원칙, 정용진의 판단
[기자수첩] 하워드 슐츠의 원칙, 정용진의 판단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11.02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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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매장에 들어서면 이름이 아닌 닉네임 뱃지를 달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 점장부터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서로를 파트너라 부르며 동등하게 대하고, 본사와 매장 직원 간에도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아닌 파트너십(Partnership)으로서 협력하겠단 스타벅스의 원칙이다. 다른 카페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전 세계 커피왕국을 건설한 스타벅스의 품격이 엿보인다. 

스타벅스는 수준 높은 고객 응대와 선제적인 메뉴 개발, 공격적인 굿즈(Goods) 프로모션 등을 앞세워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과한 친절이나 철저한 무관심이 아닌 적당한 물리적·심리적 거리 안에서 고객을 대하는 스타벅스 파트너의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 일정한 방향 내 어조와 태도, 소통)’는 국내 카페업계의 표준으로 삼을 만큼 자부심이 높다. 또한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 산하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복리후생은 업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성인남녀가 가장 아르바이트하고 싶은 프랜차이즈 브랜드 1위(2019년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커피전문점 직원만족도 1위(2015년 소비자원) 등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과거만큼 아니지만 ‘손님은 왕이다’란 우리나라 특유의 서비스 문화는 매장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파트너를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잔 조직문화를 자양분 삼아 다시 고객에게 질 높은 응대로 되돌려주며 성장했다. 국내 1위 커피전문점(매출액 기준)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다. 적어도 한 달 여전 스타벅스 파트너들의 트럭 시위가 있기 전까진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스타벅스 일부 파트너들은 지난달 초 과도한 업무부담과 처우 개선,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이틀간 트럭 시위를 전개했다. 노조가 없는 스타벅스 한국법인 매장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국내 스타벅스 역사상 처음이다. 이들은 “파트너는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5평도 안 되는 직원 휴게 공간, 파트너들은 매일 대걸레 옆에서 밥 먹는다”, “대기음료 650잔에 파트너는 눈물짓고 고객은 등 돌린다”며 근무환경의 열악함을 호소했다. 지금껏 알고 있던 직원 존중의 스타벅스 가치와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지 22년째인 올해 1500여개 매장, 매출 2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파트너 처우는 그만큼 올라가지 못한 것이다.    

송호섭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대표는 부랴부랴 매장 직원들에게 사과 메일을 보내고 1600명 채용 확대와 휴게공간 리뉴얼 등 근무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공고했던 스타벅스 브랜드 이미지와 위상, 소비자 신뢰엔 생채기가 났다. 더욱이 정용진 부회장 주도로 신세계가 스타벅스 한국법인 지분을 추가 인수하며 최대 주주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직후라 여파는 꽤 컸다.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전(前) 스타벅스 회장은 한창 위기였던 2008년 CEO로 복귀하면서 매장 확대 등의 성장 제일주의가 스타벅스의 가치를 망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 홀로 성공하는 것은 공허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공에 도달해야 값진 것이다. 얼마나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위대한 회사는 바로 사람을 존중하는 회사”라며 최우선 가치로 직원 만족과 행복을 꼽았다.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 추가 지분 인수 직후 고객에게 ‘더 큰 스타벅스 경험’을 약속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에게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유일한 대상은 고객”이라며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객의 더 큰 경험을 강조한 신세계는 성장 제일주의가 아닌 매장 파트너의 존중으로부터 나온다는 하워드 슐츠 전 회장의 원칙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정 부회장이 스타벅스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떤 판단을 할지 궁금하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