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효’인 상가규약이라도 단전조치가 ‘유효’한 경우도 있다
[기고] ‘무효’인 상가규약이라도 단전조치가 ‘유효’한 경우도 있다
  • 신아일보
  • 승인 2021.11.0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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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숙 변호사
엄정숙 변호사
엄정숙 변호사

‘무효’인 상가규약이라도 단전조치가 ‘유효’한 경우도 있다.

“집합건물 관리실입니다. 한 개 호실 소유자가 많은 금액의 관리비를 연체하여 규약에 따라 전기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규약이 법적으로 무효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합건물에서 구분소유자가 관리비를 연체하여 단전, 단수 조치를 당하는 일이 있다. 이 때 구분소유자는 관리규약 무효를 주장하며 관리주체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무효인 규약에 근거한 단전조치라도 사회 통념상 허용될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다면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관리규약이 법률상 결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도 단전 조치가 위법은 아닌 경우가 있다.

단, 단전 조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단전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령이나 규약이 있어야 한다. 근거가 없는 경우에 관리비 미납을 이유로 단전 조치를 하면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최근 무효인 규약에 근거해 단전 조치를 취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가 패소 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2018다38607).

집합건물의 관리단 A는 구분소유자 B가 관리비 6천 만원을 납부하지 않아 지연손해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B는 미납금액을 분할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조정성립으로 사건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B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A는 수차례 내용증명을 발송해 관리비를 독촉했으나 납부하지 않았다. A는 규약에 따라 전기를 끊어버렸다.

이에 B는 규약은 법률상 결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규약이라며 A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원심은 "관리규약이 집합건물법 조항의 결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B는 조정이 성립한 다음에도 관리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단전 조치는 연체관리비를 지급받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서,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을 벗어난 위법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관리단 A의 손을 들었다. 즉, 관리규약의 효력은 없지만 A의 단전조치는 정당했다는 설명이다.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인정했다. “관리 주체나 구분소유자 등이 규약을 유효한 것으로 믿고 규약에 따라 집합건물을 관리하였는지, 단전 조치를 하지 않으면 집합건물의 존립과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지, 구분소유자 등을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등을 종합하여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을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단전 조치가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비록 규약이 무효라도, B가 유효한 것으로 믿고 오랜 기간 따랐고 조정성립 후 지속적으로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는 등 특별한 사정도 있었기 때문에 A는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만약 집합건물 관리단체 입장에서 입주자들이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까. 규약에 관리비 연체 시 단전 조치 등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근거가 있더라도 단전 조치의 경위 동기와 목적 수단과 방법 입주자가 입게 된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인지 법률전문가와 함께 검토한 뒤 조치해야 순조롭다.

정리하면, 집합건물의 상가규약이 무효인 경우라도 단전조치는 유효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안에 있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주자(구분 소유자)는 관리비 연체를 피해야 한다.

위 사례에서 집합건물의 관리단이 취한 단전조치는 적법하다. 규약이 ‘유효냐 무효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전조치가 사회통념상 정당했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정숙 변호사

[엄정숙 변호사 프로필]

△제39기 사법연수원 수료
△현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현 부동산 전문변호사
△현 민사법 전문변호사
△현 공인중개사
△전 서울시 공익변호사단 위촉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전 서울시청 전, 월세보증금 상담센터 위원
△저서 : 명도소송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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