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에서 대통령으로'…故 노태우 영욕의 삶
'군인에서 대통령으로'…故 노태우 영욕의 삶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1.10.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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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쿠데타로 ‘신군부 2인자’ 부상…직선제 대통령 당선
'보통사람 시대'로 군부정권 탈색… 올림픽개최 등 성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첫 대통령으로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의 과도기를 이었다.

그는 군사 쿠데타로 ‘신군부의 2인자’에 오른 후 대통령 당선, 조기 레임덕과 퇴임 후 옥고까지 치르며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살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따른 국가 위기 상황에 정치 무대에 전면 등장했다. 그는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을 거치며 군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5공화국 말기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급부상하며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그해 12월 치러진 직선제 대선에서 그는 민주화 진영의 호소에도 후보 단일화를 끝내 거부하고 독자 출마를 강행한 양김(兩金), 즉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제6공화국의 시대를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점진적인 개혁 조치로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려 했지만, 취임 두 달 만에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총선 패배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 놓이면서 정상적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김영삼(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의 공화당을 합치는 기습적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출신과 이념이 전혀 다른 정파끼리 합친 탓에 출범부터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삐걱댔고, 결국 국정 장악력을 급속도로 위축시키며 임기 중반부터 레임덕에 빠졌다.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물태우'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하지만 그는 통일 외교 분야에선 혁혁한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중국과 수교하는 등 북방 외교에 적극 나선 것은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힌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과 이후 청사진을 제시한 점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3년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돼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7년 12월22일 김영상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