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치 밑돈 3분기 성장률 '0.3% 쇼크', 정부 견인 카드만 남아
가계 씀씀이 부진에 공급망 차질 극복 필요하지만 긴축이 문제
올해 4% 경제성장률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중앙은행의 전망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남은 4분기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남은 난관이 녹록하지 않아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이 477조7142억원이라고 26일 발표했다. 전 분기 대비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분기 성장률 기준으로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지난해 2분기(-3.2%) 후 가장 낮은 점이 눈길을 끈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를 비롯한 내수가 부진한 영향이 컸다. 2분기 2.5%p였던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3분기에 -0.5%로 성장세를 오히려 상쇄했다. 순수출(수출-수입) 기여도는 0.8%를 기록해 성장을 견인했다.
부진한 3분기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는 성장률 전망치(4%) 달성에 연말까지 남은 기간 온 힘을 쏟을 태세다. 시간과 여력이 충분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음달 방역체계가 전환된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로 사회 기류가 바뀌는 데다 소비쿠폰·상생소비지원금(카드캐시백) 등 소비진작책도 내놨다. 유류세 인하 방안도 발표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지 낙관하기는 어렵다. 국내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증가가 더딘데, 지난 3분기 -0.3%를 기록했다. 내수가 힘을 쓰지 못 하는가운데, 수출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3분기 수출 증가율은 1.5%를 기록해 전분기(-2.0%) 대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로 가동을 멈춘 전세계 공장이 다시 돌아가면서 석탄·석유제품과 기계 및 장비 수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간단히 말해 수출이 지금처럼 선방해 주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위축이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해소되면 위기 국면의 탈출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황상필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우리 경제가 전망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백신 접종 확대와 다음달 방역체계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 민간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도 "올해 성장률이 4%를 기록하려면 올해 4분기 성장률이 1.04%를 웃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소비 확장이 관건인데,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이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 "(올해 연말에는) 거리두기가 완화되기는 되는데, 평년처럼 소비를 하고 수출도 진행되면 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출 밀어내기와 연말 소비, 기대하기 어려운 '병목'
다만 통상적으로 4분기에 타 분기 대비 수출이 더 늘어나는 것은 "이른바 밀어내기 효과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또 이 팀장은 "연말 소비 기류도 평소 같으면 기대해 볼 수도 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가 끝난 게 아니라) 거리두기 완화가 되기는 되는데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예 처음부터 올해 4.0% 성장률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이번 3분기 실적으로 뚜껑을 열어본 '중간결과'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겪는 상황이라 돌파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특히 그는 "반도체 생산이 부족한 상황이고, 물가 상승이 석유와 원자재 부족 등에 의해 주도되는 점 등이 우려스럽다"면서 우리가 직면한 위기 상황의 예후가 나쁘다고 지적했다.
재정을 투입해 국민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소비진작 유도에 대해서도 "재정에서 끌어오는 것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건강한 정책적 부양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고식지계를 강행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에 기업 투자도 감소해 3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이 나빴던 상황(-2.3%를 기록)의 내막을 보면 반도체 부족 등 글로벌 공급 부족 상황이 단순히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쇄 파장을 빚는 유기적 고리를 만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기업 투자 감소의 주된 원인은 기업의 트럭·승용차를 비롯한 운송장비 투자가 대폭 감소한 결과다. 공급망 훼손으로 차량용 반도체 조달이 끊기자 트럭과 승용차 수급 여건이 나빠졌다. 장차적으로도 경제적 악재로 우리 당국을 괴롭힐 소재이며, 소비 진작의 한 측면에서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도 부품이나 원자재 수급 발목잡기 효과가 오래 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위드 코로나 전환과 부양책 단행으로 가계도 지갑을 활짝 열 전망이라는 데에도 경고음이 들어오고 있다.
위드 코로나와 각종 소비진작으로 식당·카페 등 대면서비스 업종에서 사용하는 카드금액이 월평균 5%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분석한다. 카드 결제금액으로 보면 월간 1조2000억원 정도가 늘어날 것이란 의미다. '유류세 20% 인하안'도 가계 씀씀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비 풀리면서 고개 쳐들 인플레, 성장 다시 악재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 둔화를 불러오리라는 전망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회복 기대치는 완성되지 못한다. 소비가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이런 효과로 성장에 다시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까지 인플레 현상을 만든 통화정책, 공급망 병목현상 등 공급 측 요인인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였다"면서 "결과적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대면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회복되는 과정에서 물가 상승 압력을 조금 더 견인할 수도 있다"면서 이 같은 가능성을 시사했다.
긴축으로 소비가 둔화될 가능성 자체도 이슈다. 즉 테이퍼링과 향후 기준금리 인상 등 미국과 유럽이 선제적으로 나설 때, 우리 경제당국이 속도를 발맞추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투자시장에서의 외국인 이탈 우려 때문에 긴축 필요성에 모르쇠로 일관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영국 리서치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26일 한국의 지난 3분기 경제회복세가 꺾인 상황과 별개로, 우리 경제가 긴축에 본격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CE는 한국은행(4.0% 전망)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금 더 높게 잡는(4.1%) 등 한국 경제 상황에 긍정적인 곳이다.
하지만 CE는 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부진했지만, 한국은행의 정책 긴축 시동 상황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CE는 한국은행이 오는 11월에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는 외에도, 내년에도 금리를 세 차례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점쳤다. 이런 상황에 부양 카드들이 온전히 힘을 받을지 미지수다. 결국 4% 경제성장률 샅바싸움에 매달릴 게 아니라, 내년도 경제 그림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하는 출구전략이 오히려 더 효용성이 클 가능성마저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