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탄소중립'의 이면
[기자수첩] 'K탄소중립'의 이면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1.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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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케이(K)는 수년 전부터 우리사회를 달군 수식어 중 하나다. 문화계에서 시작된 K-POP(케이팝) 열풍은 2018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200 1위에 오르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다방면의 콘텐츠들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며 K영화, K드라마, K웹툰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문화에서 기원된 콘텐츠들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현상 앞에 수식어 K를 붙여 표현한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수식어 ‘K’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확산세가 극심했던 미국·유럽과 달리 지난해 중순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공하자 ‘K방역’을 내세웠다. ‘검사·확진에서 역학·추적, 격리·치료’로 이어지는 K방역모델을 국제사회에 제시해 표준화로 인정받았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정부 부처들까지 K방역의 우수성을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방역성공의 배경엔 국민들의 헌신과 기업, 중소상공인들의 희생이 있었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권 국가와 달리 대부분의 한국시민들은 갑갑함을 참으며 정부가 추진한 마스크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따랐다. 방역 일선에 나선 의료진들은 연휴도 반납하며 구슬땀을 흘렸고 요식업계 소상공인들은 폐업 위기를 겪고 있다.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K방역의 이면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소중립위)가 발표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도 ‘K탄소중립’로 불리진 않을지 걱정된다.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아닌 UN이 주도하는 정책이지만 K방역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국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국격 상승’이란 공식을 갖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열린 탄소중립위 2차 전체회의에서 “2030 NDC 상향안은 국제사회에 우리의 탄소중립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물론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주요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따라가지 못한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급히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특히 탄소중립위는 출범 후 5개월이란 짧은 시간동안 상향안과 최종안을 마련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2018년 배출량 대비 26.3%였던 NDC를 40%까지 상향시켜 기업들의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들은 탄소중립위의 최종안 발표에 ‘산업계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 중이다. 또 현 정부가 치적쌓기용으로 목표치를 상향하고 실현부담은 차기 정권에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까지 나선 마당에 목표를 다시 하향하긴 어렵다. 정부는 실현 가능하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을 발굴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앞으로 언급될지는 모르겠지만 ‘K탄소중립’이 회자된다면 K에 △보여주기식 △정치적 생색내기라는 의미가 담겨선 안 된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