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식품부 장관의 다른 잣대
[기자수첩] 농식품부 장관의 다른 잣대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10.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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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은 측근 특별채용과 욕설 파문으로 취임 7개월여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마사회는 수장 해임이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불안감이 커질 법하지만 지난 8월 ‘비상경영위원회’와 ‘경영개선TF’를 꾸리고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다잡으며 ‘뉴(New) 마사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쓰고 있다. 

연매출 7조원을 웃돌았던 마사회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경마산업이 초토화되면서 경영에 큰 위기가 닥쳤다. 정운천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 매출은 코로나19에 따른 경마운영 제한으로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동기와 비교해 11조원가량 급감했다. 운영기간과 입장객도 각각 138일, 1934만여명 줄었다.

마사회는 그럼에도 말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무관중 경마 경기에 매주 70억원 가량의 유보금을 투입했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투입된 유보금만 5000억원 이상이다. 마사회 유보금은 2만4000여명의 말산업 종사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마사회는 지난해 4600억원을 웃도는 적자를 냈다. 유보금도 거의 바닥났다. 이제는 빚을 내야하는 차입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벼랑 끝 절벽에 몰린 말산업 종사자들과 마사회에겐 ‘온라인 마권 발매’가 유일한 희망이다. 올 들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로 모두 좌절됐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발매 법제화에 늦게 뛰어든 경륜·경정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올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8월부터 현장에 적용 중이다. 수차례 집회와 1인 시위로 생존을 외쳤던 말산업 종사자들은 같은 정부 다른 잣대로 역차별 받았단 생각에 울화통이 터졌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사행성 조장 등 국민적 공감대 부족을 온라인 마권 도입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륜·경정의 사례를 비춰볼 때 그 논리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김우남 전 회장 이슈로 마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크게 의식했을 거란 이유가 좀 더 납득이 간다. 김 장관이 우려했던 마사회의 CEO 리스크는 이제 사라졌다.  

김 장관은 올해 국정감사 첫 날 업무추진 현황 발표에서 ‘디지털화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와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강조했다.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은 김 장관이 역점을 둔 농정 키워드를 모두 관통한다. 

경주마 농가들은 말 공급에 차질을 빚으며 수억 원의 빚더미에 앉았고, 마사회가 매년 1000억원 이상 낸 축산발전기금도 지난해부터 끊기면서 축산농가 어려움은 가중됐다. 지난 한 해 말산업 피해액만 7조6000억원에 달한다. 

농정 책임자로서 김 장관에겐 더 이상 복지부동(伏地不動)할 명분이 없다. 농가를 살리고 마사회 경영을 정상화해야 하는 선택만 남을 뿐이다. 김 장관의 결단이 하루빨리 필요하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