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자산, '외양간 고치기'는 소 잃기 전에
[기자수첩] 가상자산, '외양간 고치기'는 소 잃기 전에
  • 홍민영 기자
  • 승인 2021.08.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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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성장해왔다. 그런 생태계가 정부의 규제 일변도로 인해 와해될 상황에 놓여있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시행을 한 달 남겨둔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호소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영위하는 거래소는 내달 24일까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수리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신고서를 제출한 곳은 업비트가 유일하다. 실명계좌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거래소들의 경우 줄폐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최근 금융위 발표대로, 가상자산 거래소 신고의 필수 요건인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신청조차 하지 않은 거래소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지금은 ISMS 인증을 받는 등 신고를 마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래소들조차 실명 계좌를 획득하지 못해 존폐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원화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ISMS 인증만 받아도 신고가 가능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원화 거래를 중지하는 것은 증권 거래소에서 주식의 원화 거래가 금지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식이 있어도 자금을 확보할 수 없을뿐더러, 시장에 신규자금도 유입될 수 없다면 그 거래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지킬 수 없는 법은 악법이다. 최근 거래소 사업자 신고를 위한 금융위 컨설팅 결과, 모든 거래소의 준비사항이 미비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모든 사업자가 정부가 마련한 법적 요건을 지킬 수 없다면, 그 요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법은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정돼야 하며, 그 법을 적용받는 주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계도 기간을 두어야 한다.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금융당국의 생각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관련 준비 답변을 통해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놨다. 하지만 이미 미국 등 선진국은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와 진흥의 조화를 맞춰 산업 발전을 돕고 있다. 해외의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한국은 '디지털 변방국'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유망한 산업은 '규제'가 아닌 '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가상자산은 더 이상 월급만으로는 자산을 모으기 힘든 2030 세대에게 희망을 줄뿐더러, 이 정부가 지향하는 일자리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망한 산업이다. 소를 잃은 다음에 외양간을 고치려 하면 비난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hong9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