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과 사법정의
[기자수첩] 이재용과 사법정의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1.08.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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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취업제한 논란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든다. 사법정의를 세워야 할 법무부가 각종 논리를 들이밀며 방어에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이 부회장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편법을 막아야 할 법무부가 오히려 분란을 조장하는 모양새다.

논란의 중심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존재한다. 시민단체에선 “특정경제범죄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 범행을 저지른 이는 5년간 해당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는 조문을 근거로 이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해 △이사회 참여하지 않는 비상근 미등기 임원 △보수를 받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이 부회장의 임원직 유지는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취업’은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자리를 얻는 행위를 의미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선 취업의 기준으로 근로형태를 가리지 않지만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규정한다. 이 부회장이 임금을 받지 않으니 취업제한 규정을 어기진 않았다는 게 박 장관의 뜻이다.

다만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무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곤 궁색하다.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 규정의 취지는 기업에 범죄를 저질렀던 이를 해당 기업과 격리해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임금을 받지 않는다고 취업이 아니라며 두둔해선 안 된다.

오히려 법무부의 수장이라면 ‘취업’이란 단어에 묶인 규정의 맹점을 인정하고 보완 또는 대안책을 마련·발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취업제한의 범위에 미등기 비상근 임원직 등을 추가하고 주요 경영진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 개정 추진 등이 있겠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의 배경에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가 자리한 만큼 취업제한을 확대 해석하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내다본다.

박 장관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부회장의 출소 당일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재벌기업이 총수 없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가석방 시켜 경제회복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뒤집어보면 보면 정치적 부담을 덜기위해 법무부를 내세워 합법적인 모습으로 이 부회장을 가석방 시켰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무부가 방패수 역할로 떠밀렸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했거나 박 장관이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해제를 승인하는 게 타당했다. 정치적으론 공격 받을 순 있겠지만 법질서를 흐리는 것보단 그게 낫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