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中 치부 건드린 韓·美 정상… '대중관계 악영향 최소화' 새 과제로
[이슈분석] 中 치부 건드린 韓·美 정상… '대중관계 악영향 최소화' 새 과제로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5.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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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에 "중국" 언급 없었지만… "남중국해·쿼드" 약점은 다 기재
中 불쾌감 우려에 여당서 "수행원 일부 귀국할 때 중국 갔어야" 의견
줄타기 외교 속 문 대통령 역할 더 커져… "제약은 곧 기회" 기대감도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대중 외교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동맹국 간 의리를 다시금 상기시켰지만, 구체적 유인책이 빠졌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로 남았다.

24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 같은 별다른 공식 일정 없이 국내외 현안을 살피며 국정 복귀를 준비했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북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 미사일 주권은 42년 만에 되찾았고, 나아가 백신 협업 등 기업 간 바이오 사업 강화와 반도체·배터리·자동차 산업 교류의 폭도 확장했다.

특히 양국 수장은 21일 공동성명을 통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란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있었던 남북미 논의를 존중한단 뜻이다.

추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선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이지만, 유인책을 거론하지 못한 건 비핵화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더욱 문제인 것은 중국이다. 한미 수장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란 단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남중국해'와 미국·인도·호주·일본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쿼드' 등을 거론하면서 "투명하고 포용적 지역 다자주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성명을 냈다. 중국에 민감한 사안을 열거하면서 압박한 것이다.

청와대는 한미공동성명 발표 직후 중국에 한국 입장을 따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전언을 내놓진 않았지만,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사실상 중국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 수행원 중 한 명이 귀국하던 중 중국에 들러 한미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설명했으면 좋겠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었다. 여론으로부터 '속국의 치욕 외교' 등 뭇매를 맞고 글은 내렸지만, 중국과의 소통 역시 대중 의존도가 높은 정부로서 마냥 외면할 순 없단 의견도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협력과 갈등 속에서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같은 날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전략 환경의 변화와 한반도' 93차 국방대학교 국제안보학술회의에서 "제약 요인과 기회 요인을 파악해 통제·활용함으로써 전략 수립의 비용을 절감하고 추진 과정에서의 장애물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한별 국방대 교수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 개입을 추구한다면 한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며 "미중 경쟁 시대에서의 한국은 자율성과 한미동맹 강화를 병행 추진하면서 국가 주권과 국제법·규범, 인류 보편적 가치 중시 등을 분명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내 여론과 정치권 분열도 달래야 할 과제다.

여당에선 송영길 대표가 "이란을 국제사회에 복귀시켰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사례처럼 단계적·실용적 유연함은 앞으로 대북 정책에 있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부각했다. 같은 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이번 방미 성과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상 이상의 엄청난 성과였다"고 호평했다.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최고의 순방, 건국 이래 최고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했지만, 호들갑을 떨 만큼의 평가인가"라며 "현금을 지급하고 물건 대신 어음을 받아온 것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국내 4대 기업이 44조원 대미투자를 발표한 것과 미국이 한국군 55만명에 대한 백신 지원 약속을 비꼰 것이다.

김 대행은 특히 "북한 완전 비핵화도 한미양국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며 "자칫하면 북한이 잘못된 기대를 하게해 향후 협상에서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 역시 "마스크를 벗은 회담이었지만, 답답함은 여전하다"며 "최고의 회담이라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과의 관계에선 우려스럽고,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선 '레토릭(수사)'에 그쳤다"고 혹평했다.

덧붙여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남북과 북미 합의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란 원칙은 확인했지만, 북한을 대화로 이끄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대중국 포위 전략을 포함한 미국의 세계 전략에 한국이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 앞으로 미국의 세계 전략에 한국이 발을 맞춰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고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기대 이하의 성적표"라며 "4대 기업의 피 같은 돈 44조원 투자를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와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탈선외교'에서 '원칙외교'로 귀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군장병 55만명 분량의 백신을 얻은 것에 대해선 "군사 동맹국에 대한 미국 측의 배려이자 군사적 필요성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국가 간 백신 협력 차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체제에서 활동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까지 나서 "미온적 공동성명은 바이든이 아직 중국과 북한을 다룰 구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북한처럼 미국과 동맹에 실질적 위협이 되는 국가보단 이스라엘 같은 우방국을 압박하는 데 더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지난주 문 대통령과의 만남은 또다른 실기(失機)였다"고 평을 내놨다.

이같은 실정에서 관건은 다음달 예정한 G7(세계 7대국) 정상회담이 꼽힌다. 이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있을 공산이 있고, 대중국 전언을 내놓을 수 있단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