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의 운명] ② 특금법 심판의 9월…대다수에 '불법' 낙인
[가상자산 거래소의 운명] ② 특금법 심판의 9월…대다수에 '불법' 낙인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1.04.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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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대부분 요건 충족 어려울 것…비정상 사업자 다수"
실명계좌 획득 여부 관건…업계 "정상 운영업체에도 난제"
법 시행 1개월여 지난 현재까지 신고서 제출 거래소 '전무'
특금법상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의무 안내문. (자료=금융위)
특금법상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의무 안내문. (자료=금융위)

가상자산 한 종류의 일일 거래대금이 코스피 전체 종목의 하루 거래대금을 뛰어넘는 시대가 됐다. 가상자산 투자 성공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영웅담이 여기저기로 퍼져가면서 코인을 사고파는 거래소로 막대한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제도권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언제 금 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고, 시장을 움직이는 거래소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달리는 모습이다. 9월 특금법 심판을 앞둔 가상자산 거래소와 투자자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편집자 주>

국제기구 합의에 따라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 방지를 위해 개정된 특금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상당수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금융당국은 대부분 가상자산 거래소가 다단계 금융사기나 유사수신행위 등에 연관돼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기존 사업자의 상당수가 특금법상 사업 신고 기한 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업계에서는 보안 인증을 받고 정상적으로 운영 중인 거래소도 신고 요건 중 하나인 실명확인 계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금법 시행 한 달여가 지났지만 지금까지 신고서를 낸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시행됨에 따라 한국에서 가상자산(암호화폐)사업을 시작하려면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는 개정법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므로, 오는 9월24일까지 신고서를 내야 한다.

여기서 가상자산사업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자산에 대한 매매 및 교환, 이전, 보관 등에 관한 영업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단, 단순 P2P(개인대 개인) 거래플랫폼이나 지갑서비스플랫폼만 제공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위해서는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등 요건을 구비해야 한다. 미신고 상태로 영업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사업자가 특금법에 따라 신고 절차를 마쳤다고 해서 정부가 사업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논의에 따라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문제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사업자 중 상당수가 이번 조치에 따라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은 200여개로 추산되는 가상자산거래소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특금법 요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날까지 특금법에 따라 신고서를 낸 가상자산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기본적으로 위법 소지가 있는 다단계 방식 사기나 유사수신행위에 연계된 거래소에 대해서는 특금법상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방침이다. 다단계 판매 방식은 사업자가 투자자를 모집하고, 모집된 투자자들이 또 다른 투자자를 모집하는 식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형태다. 실제 사업을 통해 수익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도 사업 초기에는 투자 원금으로 수익을 채워 준 뒤 누적 투자금이 고점을 찍었을 때 돈을 챙겨 파산하거나 도주하는 수법을 쓴다.

금융정보분석원 관계자는 "거래소에서 주식들 매매가 이뤄지듯이 단순히 매매 차익만 발생하는 형태의 거래소는 국내에 4개 정도 있고, 그 외에는 대부분이 폰지사기라던가 다단계, 유사수신형태여서 그게 지금 문제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투자자 유의사항. (자료=금융위)
가상자산 투자자 유의사항. (자료=금융위)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갖춰야 할 특금법상 요건 중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확보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 모습이다. 현재는 국내 거래소 중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4곳만 이 조건을 충족한다.

블록체인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을 해왔는데, 4개 회사 외에 한 곳도 실명 계좌가 열리지 않았다"며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을 받은 거래소들도 은행과 실명 계좌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은행권에서는 가상자산 업계가 생각하는 거래소의 안전성과 은행들이 내부적으로 설정한 기준 간 괴리가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은행 입장에서는 계좌를 내 준 거래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것이 사고 거래소를 이용 중이던 고객들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부담이다.

이미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를 제공한 바 있는 A은행 관계자는 "은행 계좌를 연결한 거래소에 문제가 생기면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 자체가 괜찮은 곳인지, 보완성은 담보가 되는지, 자금세탁 방지 방안은 갖춰져 있는지 등을 본다"며 "현재로서는 추가로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