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등이 어울리는 정당
[기자수첩] 2등이 어울리는 정당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4.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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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장기 유지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 같다. 4·7 재·보궐 선거에 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애당초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자신의 당 소속 서울시장이 성폭행을 저지르고 궐위하면서 벌어진 대내외적 '대망신' 선거다. 여당이 염치없이 당헌·당규를 바꾸고 후보를 내세울 자격도 없는 입장이었다.

강성 친문 지지층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대 패악을 끼친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아니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와 여당의 피해자 외면이 공분의 씨앗이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에 가장 큰 타격을 줬지만, 친문은 되려 문 대통령에게 빌런(악당)인 박 전 시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상식적인 사고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당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후보를 꼭 내고 싶었다면, 진정어린 사과부터 하고 돌입했어야 할 선거다. 공직사회와 언론 사이에선 서울시장에 출마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뛰어나고, 일 잘 할 수 있는 인물이란 걸 모르지 않다. 박 전 시장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잘못도 없다는 건 여론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출마한 후보라면 피해자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렸어야 했다. 당시의 충격을 잊고 싶고, 사회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다신 재기할 수 없을 거란 불안감에 휩싸여 박 후보에게 손을 내민 그 피해자를 감싸야 했다. 피해자와의 '연대'를 외치고, 포용하고, 그 상처에 애도를 표했어야 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선만 지키며 더 다가가지 못했고, 내줘야 할 것도 내주지 않은 오만함을 보였다. "(피해자와)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면 만나겠다"는 박 후보의 말은 한탄스럽기 그지없었다.

여당은 이번 선거가 왜 열린 것인지 이젠 완전히 망각한 모양새다. 반성은 전혀 없고, 네거티브(음해)와 마타도어(모략)에만 치중하면서 지지층 끌어모으기에 혈안이 됐다. 특히 고민정 의원의 우는 사진은 어이가 없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실언을 내뱉은 사람이 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인지,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 전 한 정치권 관계자가 "쟤들은 진짜 2등이 편한가봐"라고 말했다. 만년 2등으로서의 야성 때문인지, 여당이 돼도 철면피를 깔고 싸울 줄만 아는 민주당이 측은했다.

지금까지의 선거를 보면 진보 진영이 결집해서 이긴 선거는 단 한 번도 없다. 온전히 국민의 선택이었다. 촛불 시위에서 시작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가 아니었다면 문 대통령 일생에서 '대통령'이란 자리가 있었을까.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여당에 투표하지 않았다면 민주화 이후 최대 의석을 만들 수 있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여당 스스로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망상이다.

지난 2일 사전투표 첫날 오후, 박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전 시장의 과오를 사과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나왔다. 그때도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야당의 공세는 뻔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 후보 입에서 나온 말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그동안 자신의 큰 처남이 내곡동 측량에 참여했다고 주장해왔다"였다.

최근 일부 민주당 인사가 유세차에 올라 떠드는 것을 보면 "이번 선거는 과거로 회귀하느냐, 미래로 나아가느냐 선거"라고 말한다. 이번 선거는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오만한 여당을 혼내주느냐, 마느냐 여부다.

일각에선 이번 재보선이 대선 전초전이란 주장을 내놓는다. 차라리 지금 혼나야 대선에서 표를 더 받을 것이란 의견인데, 여당이 이긴다면 대선도 민주당의 승리다. 박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박원순 지우기'부터 나서고 이번 선거가 성폭행 때문에 벌어진 선거란 건 다 잊혀질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성찰해야 한다. 국민에게 "도와달라" 읍소할 게 아니라 피해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연대'해야 한다. 남인순 의원을 징계하고 '피해호소인'이라며 외면한 이들에게 경고를 줘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박영선의 잘못입니다"라고.

[신아일보] 석대성 기자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