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동 사망사건 보도, 신중 기해야”
[기자수첩] “아동 사망사건 보도, 신중 기해야”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1.03.28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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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상을 떠난 두 명의 아이에 관한 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안겼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와 부모의 방치로 사망한 ‘구미 3세 여아’ 보람이 사건이 그것이다.

학대로 쇄골과 갈비뼈 등이 골절되고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정인이. 이 사건은 한 시사다큐 프로그램에 방영되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정인양이 사망 직전 폭력으로 인해 음식물조차 삼키기 힘들 정도로 장기가 손상됐다는 사실과, 3번의 학대 신고에도 경찰이 정인양을 양부모에게 돌려보냈다는 것에 대중은 분노했다.

이에 사람들은 정인양의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했고, SNS 등에서는 ‘제 2의 정인이를 막자’는 캠페인도 이어졌다. 또, 부실수사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경찰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4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달 10일, 구미의 한 빌라에서 3살 된 여자아이가 미라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친모인 김씨(22)가 재혼 등을 이유로 딸을 빈집에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파악했다.

정인양의 양부모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옅어질 무렵, 또 다시 힘없는 아이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반복되는 아동 사망사건으로 아동 보호 체계에 대한 무력감이 느껴질 무렵, 아이의 목숨보다 사건의 자극적인 부분에 언론의 초점이 맞춰지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 씁쓸함을 안기기도 했다.

경찰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숨진 여아의 친모는 김씨가 아닌 김씨의 어머니 석씨(48)로 밝혀지면서 사건이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때부터 언론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친모 석씨의 실체와 남자관계를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건 초기 사람들은 아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의 비정함과 무책임함에 분노했다면, 시간이 갈수록 친모 석씨의 사생활과 ‘친부 찾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석씨가 자신은 숨진 여아의 외할머니라며 "딸을 낳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부가 누구이며 출산시점이 언제인지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숨진 여아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정인이 사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양부모가 얼마나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지에 촉각을 세웠지만, ‘3세 여아’ 사건에서는 친모와 언니(당초 친모로 알려진 김씨)가 어떤 벌을 받게 될지 보다 친부의 실체, 친모 석씨의 얼굴과 내연남, 아이의 외모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이는 피해 아동의 얼굴이 공개되자 아이의 예쁜 외모를 부각해 기사를 쏟아낸 언론의 탓도 크다. 이에 일각에서는 아이의 얼굴 공개와 이에 대한 기사가 사건의 핵심이 아닌 외적인 부분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고, 아이를 외모로 평가하는 듯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에서 모든 사안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방임으로 인한 아동 사망’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피의자의 ‘사생활’ 문제나 다른 요소들로 뒤덮여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아동 학대‧방임, 이로 인한 사망사건은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할 심각한 사회문제로 관련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