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신화 일군 '라면쟁이' 신춘호 농심 창업주 잠들다
신라면 신화 일군 '라면쟁이' 신춘호 농심 창업주 잠들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03.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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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7일 향년 92세로 별세
확고한 브랜드 철학, 장인정신 고수
특유의 얼큰한 맛, 대표 K-푸드로 키워
3월27일 별세한 신춘호 농심 창업주. (제공=농심)
3월27일 별세한 신춘호 농심 창업주. (제공=농심)

'라면왕' 율촌 신춘호 농심 회장은 3월27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신 회장은 ‘신(辛)라면’을 비롯한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앞세워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농심의 위상을 드높였다. 

라면이 해외 무대에서 K-푸드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신 회장의 공이 지대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1965년 농심 설립…'한국적인 맛' 강조
신춘호 회장은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고(故)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고, 1963년부턴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 돼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신 회장은 브랜드 철학도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하는 것은 물론, 제품 이름도 개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고 누차 얘기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맛’을 강조했다. 

농심 본사. (제공=농심)
농심 본사. (제공=농심)

일례로, 신 회장은 안성공장 설립 때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 제조설비를 검토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의 맛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한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최고의 역작 '辛라면' 이름도 직접 지어 
지금의 신라면과 안성탕면, 새우깡 등 농심의 스테디셀러는 모두 신춘호 회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이 높은 이유다. 

그는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 모두 신 회장이 직접 네이밍에 관여했다. 

신춘호 회장의 대표작은 농심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신라면이다. 지금이야 신라면이 국내외에서 익숙한 이름이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이었으며,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관심을 보이면서도 제품 개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신 회장 스스로 ‘라면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 장인정신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수출 100여개국, 신라면 세계화 이뤄내
신라면은 1990년 초반부터 국내 라면시장을 주름 잡는 최고의 라면으로 올라섰다. 신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신라면의 세계화’, 이것이 신 회장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중국 베이징의 까르푸 매장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신라면을 들고 있는 모습. (제공=농심)
중국 베이징의 까르푸 매장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신라면을 들고 있는 모습. (제공=농심)

그의 바람대로 신라면은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글로벌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으며 현재 전 세계 100여개국에 활발히 수출되고 있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K-푸드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농심 관계자는 “신 회장은 지난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로 꼽았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밝혔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과 신동원 농심 부회장,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인 신윤경 씨 등 3남 2녀를 두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회장의 둘째 동생이기도 하다.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의 빈소는 27일 서울 종로구 소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3월30일 오전 5시, 장지는 경상남도 밀양 선영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