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 정상들 '미얀마 쿠데타' 규탄 쏟는데… 국제 현안 못 따라가는 文
민주국가 정상들 '미얀마 쿠데타' 규탄 쏟는데… 국제 현안 못 따라가는 文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2.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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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든 "민주주의 대한 공격"… 英 존슨 "민간인 불법 투옥"
'민주 총선' 축하했던 문 대통령 조용… 외교부만 원론적 우려
교민 "인권 변호사 출신 맞나"… 행정부 할 일도 국회가 대신해
미얀마 군경이 현지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사진=제보)
미얀마 군경이 현지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사진=제보)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관련해 민주주의 국가 정상들의 규탄이 쏟아지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은 실정이다.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 현안에 못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니냐 비판이 나온다.

3일 청와대에 따르면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부는 아직까지 내부에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다른 민주 국가에선 지도자나 외교 분야 국무위원이 직접 나서 쿠데타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대조된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이번 쿠데타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을 경고했다. 또 쿠데타 철회와 시민 폭력 억제를 압박하도록 국제사회가 힘을 모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직접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포함한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투옥한 쿠데타를 규탄한다"며 "국민 투표 결과를 존중하고, 민간 지도자를 석방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미얀마에서의 쿠데타를 강력히 규탄하고, 습격 끝에 불법으로 억류한 모든 이들의 석방을 군부에 촉구한다"며 선거 결과 존중과 민주적 절차 복구를 요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국제연합(UN) 사무총장도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는 미얀마의 민주주의 개혁에 심각한 타격"이라며 "모든 지도자는 미얀마의 민주적 개혁이란 대의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호주의 경우 마리스 페인 외무장관이 "지난해 실시한 (미얀마) 총선 결과에 따라 평화로운 의회 재소집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담화를 통해 "미얀마에서 긴급사태가 선언돼 민주화 과정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며 "수치 고문을 포함한 관계자의 석방을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가토 가쓰노부 관방 장관이 나서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이 훼손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강하게 우려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사태를 따지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군부가 내년에 추진하겠다는 총선을 치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뒤늦은 지난 2일에서야 외교부 대변인 성명으로 "최근 미얀마 내 정치적 상황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전했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압승을 축하했다는 걸 고려하면 비판 수위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 등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미얀마 교민은 <신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과 북한에만 인권이 있고, 우방국 인권은 외면하는 것인지"라며 "지난번 (문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면서 친밀감을 과시했던 걸 생각하면 소극적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와 외교부 등이 적극 나서야 할 문제가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자 되려 국회가 행정부 대신 나서는 모양새다.

아시아인권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도 민주화 성취를 위해 과거 많은 희생을 치렀으며 이번 미얀마 쿠데타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이자, 반역사적 사안으로 절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제사회는 쿠데타를 주도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철회하고, 미얀마 민주 정부가 다시 복권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언제까지나 국민을 총·칼로 위협해 권력을 유지할 수는 없다"며 "민주화 운동 탄압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군정 종말을 앞당기는 자충수가 되곤 한다"고 부각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현대사가 이를 입증한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의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미얀마 군정에 반대하는 국제사회 연대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미얀마 사태를 비평하지 않은 곳은 주변국인 필리핀과 캄보디아, 중국뿐이다. 필리핀 해리로케 대통령궁 대변인은 "어디까지나 내정 문제"라며 "참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캄보디아 훈센 총리도 "미얀마 내정 문제에는 논평하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특히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미얀마는 좋은 이웃으로서 갈등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고 미온적 입장을 내놨는데,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미얀마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나아가 일부 외신에 따르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쿠데타 20일 전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의 전환 발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미얀마 쿠데타로 북한 문제는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됐지만,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할 공산은 더더욱 커진 실정이다.

미얀마 쿠데타 해결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무대 첫 시험대가 된 가운데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미얀마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 문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관심을 모은다.

아직까진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 간 통화 시기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얀마 쿠데타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행보가 추후 현지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인회도 주목하고 있다.

쿠데타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해도 현지 국민 시선에선 당시 한국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 평가할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신아일보] 석대성 기자

bigstar@shinailbo.co.kr